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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아버지가 꿈에 나오시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10년 넘게 애지중지하던 
노트북이 먹통이 되면서

나는 무릎 쪼그리고 앉아 
살아생전에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다 

상차림은 큰애한테 넘기고 
설날 여행이나 갈까했는데 
아버지가 먼저 알아버렸네…

새해 들어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바람에 자꾸만 집밖으로 나돌기가 일수였다. 가끔은 순환버스를 타고 해안도로를 돌다가 해넘이를 보게 될 때면 무작정 버스에서 내리고, 그 순간 갯바람이 나를 떠안을 듯 덮쳐올 때면 내 두 팔은 저절로 펼쳐져 바람을 안는다. 그때마다 드넓은 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먼 수평선에 눈길을 주다가, 오고 가는 선박들을 보면서 문득 나 역시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조급함이 일기도 했는데, 오늘은 정말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애지중지하며 품안에 자식처럼 안고 살았던 노트북이 갑자기 먹통이 되면서 바탕화면의 모든 데이터가 미세먼지에 쌓인 듯 부옇게 변해 버렸다. 결국 용산전자상가로 줄행랑을 쳐 데이터 복구센터를 찾아갔는데 해킹을 당했단다. 

신종사기로 컴퓨터에 무단 침입을 한 다음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잠금장치로 이용해서 돈을 요구하는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단체에 내 노트북이 걸려든 거라고, 해결책은 그들에게 250만원을 주든지, 아니면 컴퓨터에 들어있는 모든 데이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나는 범죄단체에 돈을 줄 수는 없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돌아왔으나 눈앞은 캄캄하고 속마음은 애가 탔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바다로 갈 일이 없지 않겠는가. 

소설을 쓰겠다고 가족들에게 등 돌리고 강화로 혼자 도망치듯 나온 4년의 세월이 한 순간에 몽땅 날아가 버린 것이다. 멍 하니 바라보는 바다 길에 한 무더기 갈매기들의 나래짓에 따라 포물선을 그리는 유연한 동작이 나를 사로잡았다. 갈매기들을 따라가던 내 눈길에 섬들이 출렁거리면서 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바다 건너 북녘 땅을 보고서야 퍼뜩 어제 밤 꿈에 보았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아버지! 이제 용서해주세요. 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살아생전에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거듭 할수록 더 깊게 반성되는 것은 이제야 철이든 까닭인지도 모른다. 

설날이 다가오면 반드시 나타나시고 그때마다 나에게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라는 걸 이제 겨우 깨달았다. 늘 원망만 하고 화까지 냈던 나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불러본다. 오늘은 그 벌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날에 여행이나 갈까하고, 설날상차림은 큰애한테 떠넘기려던 참이었는데 용케도 아버지가 먼저 알아버렸네. 아버지한테 들켜버린 이 기분 아세요? 죄송해요. 아버지, 나는 입속으로 아버지를 다시 한 번 읊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겨우 1년에 두 번 있는 추석 명절과 설날 상차림이 귀찮아 꾀를 부렸던 게 부끄러웠다. 벌이야, 죄를 졌으면 마땅히 받아야지.

결국 노트북의 비상사태는 내가 지은 죄 값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모든 게 자연발생적인 것 같지만 인과응보(因果應報)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진 것 같고, 그토록 애지중지 하던 노트북도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고 다시 한 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벌이 아니고 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내 뻔뻔함에 혼자 웃고 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그래 상이라고 생각하자. 어제가 오늘이 아니듯 모든 건 다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도 큰 상이 분명하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라는 경구(警句)가 이제야 내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 같다.

[불교신문3460호/2019년1월30일자]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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