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자랑스런 종도입니다
우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자랑스런 종도입니다
  • 일감스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중앙종회의원
  • 승인 2018.12.3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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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기고] 초심을 밝히자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계승한 조계종의 구성원으로서 수행과 전법에 더욱 매진해야 할 한해다. 사진은 포살법회에 참여한 스님들이 <범망경보살계포살본>을 일고 있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이제 새 달력의 첫 장을 바라봅니다. 첫 장의 달력을 앞에 놓고서는 누구나,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인생을 새로 시작해 보고자 하는 희망을 품게 마련입니다. 새해에는 새롭게 인생을 설계해 볼 일입니다. 설사 중간에 계획이 변경되더라도, 지금은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 소망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수 십 년을 통해 겪어 보았지만, 그런 줄 알더라도 또 새롭게 설계하고, 다짐하고, 첫 발을 내딛어 보는 것이 인생입니다.

뜨거웠던 여름,
기억해야 하는 여름

새 아침의 다짐과 함께, 우리 종단의 지난날과 오늘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특별히 뜨거웠던 날씨만큼이나 힘들었던, 저번 여름의 일들을 돌아보면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조계사 일주문 앞에는 늘 이런 저런 시위가 있었습니다. 피켓시위를 포함한 종단과 스님들을 향한 이런 저런 구호와 외침들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1인 시위 뿐 아니라, 각종 단체들, 가끔은 태극기 부대, 심지어는 문중의 땅을 내놓으라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외부의 힘을 빌려서 우리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했던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릴 일입니다. 주요 매스컴에서 우리 종단의 문제를 보이는 모습 그대로, 낱낱이 보도하다 보니, 그 상처는 고스란히 우리 종단 전체가 멍들어야 했습니다.
포교와 전법, 복지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던 스님들과 불자들의 소중한 결과물들이, 터진 둑에 물 빠지듯 허물어져 갔습니다. 우리끼리의 다툼이 내부로 그치지 않고 외부로 번져갈 때는 그 부정적 파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승가 내외를 막론하고 불신의 벽은 점점 커져만 갔고, 사회적으로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출가자가 급격히 감소한 심각한 지경에  있는데, 이런 악재는 아픈 상처에 상처를 덧입히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군다나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논의 해보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이 났습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많은 아쉬움과 의문만을 남긴 채,  선거가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선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닐진대, 선거와 함께 끝이 났으니 한편, 다행스럽다고 말하기조차 두렵습니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을 돌아봐야 하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작은 논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생들의 고통 앞에 우리 불교가 답을 내 놓지 못하면, 중생이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등을 돌린다는 말이 됩니다. 중생이 없는데 우리 불교가 설 자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대중 스님들과 종도들의 문제의식에, 종단과 각 교구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는 여러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출가자들이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하고 수행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이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다시 얘기를 꺼내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번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몇몇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갈 곳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스님들을 종단이 돌보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단의 소임을 보거나 주지소임 또는 문중의 사찰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역할이나 소임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기도 소임도 있고 다른 소임들도 있지만, 수행이나 소임이 끝나면 안전하게 돌아갈 곳이 없는 것도 우리 종단 스님들의 현실입니다.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하면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선방을 잠시 쉬거나, 일시적으로 소임이 없더라도, 쉬면서 정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선방에서 정진하는 선배스님 한 분은 해제 때 마다, 짐들을 어디다 둬야 하나? 하고 고민한다고 들었습니다. 짐 하나를 놓을 곳이 없는데, 다른 문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부터 혁신해야
중앙과 교구가 앞장서야

종단이 이 문제를 적극 나서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종단 중앙과 교구본사들이 힘을 합치면 못할 일도 아닙니다. 몇몇 교구에서는 교구의 스님들을  책임지기 위한 현실적 방안들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교구내의 수 말사 한 두 곳을 정해서, 그곳의 예산은 교구 스님들의 복지 예산으로 쓸 수 있도록 정하고, 집행하는 교구도 있습니다. 진즉 했어야 하는 일입니다.
각 교구에는 예산이 좀 여유가 있는 전통사찰 수 말사들이 있습니다. 이 사찰들은 당대에 창건한 사찰 보다는, 우리의 오래 전 선대스님들이 창건한,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사찰들입니다. 당대의 스님들이 전체대중을 대표해서, 임시적인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새롭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런 사찰들은 대중 전체를 위한 공적인 개념을 가지고, 교구 전체스님들을 위한 복지라든지, 교구나 종단의 목적사업을 위해 예산이 사용된다면, 수말사들의 가치가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그 사찰들은 그 사찰대로 지역사회를 위한 역할이 있고, 예산의 쓰임이 다 정해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종단의 근간에 대해서, 크게 생각의 전환을 이룰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종단 중앙과 교구가, 서로 힘겨루기 하는 것처럼 자리에 앉지 말고, 서로 힘 빼고, 정말로 종단의 미래를 위해서, 마음을 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힘을 합해서 우선, 급한 일부터 먼저하고, 장기 계획을 차례로 세워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항상 깨달음이 먼저였습니다. 깨달음의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가르치고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해도 우리 승가구성원이고, 깨달음을 얻거나 얻지 못했거나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깨달음에게 모든 일을 맡길 것이 아니라, 뒷일 걱정하지 않고 정진할 수 있고, 정진만 해도 뒷일이 안심이 되는 풍토를, 종단과 교구가 먼저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종단은 무소유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소임을 보는 스님들은  재산이 있을 경우, 종단에 등록해야 합니다. 하지만, 법계가 달라질 때, 새로 받아야 하는 가사 한 벌도, 종단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종단이 가사를 내려 주면 자긍심과 애종심이 더 생길 터인데, 가사를 ‘내 돈 내고 내가 받아야’ 하니, 종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어른 스님들은 호통을 치십니다. 종단이 머리 깎아 줬으면 되었지, 무엇을 바라느냐고. 그래서 각자도생이라는 말도 있는가 싶습니다. 각자 도생하는 마당에 공동체 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어떻게 지켜낸 종단인가 
화합과 혁신의 미래불교 열자

우리 종단은 과거, 조선시대 억눌렸던 시대에도 살아남았고, 온 국토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도 잘 버텼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독자적인 종단을 세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과 함께 부침을 겪다가, 해방과 함께 정화불사의 힘든 과정을 지나, 드디어,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노력과, 한국불교다운 면모를 갖춘 ‘대한불교조계종’을 창종하게 되었습니다. 
1600년 한국불교의 긴 역사 속에, 새롭게 일어선 ‘대한불교조계종’이 어떤 무게감으로 존재하는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국가나 권력에 예속된 관치불교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종헌과 종법을 바탕으로, 계단을 세우고, 법통을 이으며, 종단의 모든 교육, 포교등을 자주적으로 펼쳐내고, 특히 종단의 재산권을 스스로  지키며, 문화를 보존, 전승하는 등 갖가지 일들을 잘 갖춰진 체계 속에서, 자율적으로 펼쳐 나간다는 것은 매우 귀중하고 귀중한 일입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거나,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종단을 불신하는 마음이 높고, 종단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있다고 하니,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종단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서 겨우겨우 세운 종단인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책임 있는 소임자들과 종단은 예사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성질 급한 사람들이  승가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는데, 인과(因果)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새해에는 나부터 먼저 변해야 합니다. 혁신해야 합니다. 집행부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혁신에 동의하고, 혁신을 논의하는 자리에  함께 참여하고, 인내를 가지고 대안을 마련하며, 집행부는 논의의 결과물을 성실하게 집행하기 위해 노력에 앞장서야 합니다. 한편, 종회는 종회대로, 혁신에 맞는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고 혁신에 더욱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평소에는 우리가 화합하지 못하는 듯 보여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화합을 이뤄내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해 내는 것도 우리 ‘대한불교조계종’ 입니다. 과거에는 나라를 구한 일에도 최선봉에 섰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때 마침36대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승가의 화합과 혁신을 위한 ‘화합과 혁신위원회’를 총무원장 직속기구로 설치 합니다.
나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먼저 내려놓고, 지금 논의하면 10년 후에는 종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논의 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도 걱정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종단을 바로 세우는 일에 “너 나 없이 힘을 합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새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종단의 백년대계를 향한, 새 아침의 화두, 화합(和合)과 혁신(革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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