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실력 갖추고도 외면 받는 연극
남 원망 않고 감동 못 주는 내부 반성
신도 감소 원인 바깥 아닌 내부에 있어 
불교가 감동 주어야 사찰 갈 마음 생겨 

연극인들을 만났다. 연극계는 오래 전부터 불황이다. 우리나라 연극인들이 능력이 부족하거나 노력을 덜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으로 인정 받는다. 우리 영화와 드라마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것은 연극계에서 우수한 연기자들을 끊임없이 양성, 배출하는 덕분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연장을 찾지 않는다. 

‘경기가 안 좋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미디어 환경이 너무 발달해서’라는 문제의 원인을 연극 외부에서 찾는 나의 진단에 무대에 서는 그 분은 자신들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사태의 원인을 안에서 찾는 냉철함과 단호함에 놀라고 마음을 움직이는데 부족함이 있어 어려움에 처했다는 지적에 감동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하루하루 공연을 이어가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수준의 연기를 펼치면서도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는데 부족했다면 큰 문제라고 여기고 더 노력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자신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지혜로운 해결책을 내놓는 연극인들을 보면서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와 해결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사찰, 군 법당 구분 없이 모두 불자들 발걸음이 뜸해졌다는 하소연이 나온 지 오래다. 그 원인을 종교를 멀리하는 사회 환경이나 젊은이들의 개인적 성향, 혹은 다른 종교의 공격적 선교 등 외부에서 찾았는데,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을 이끌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공연장이든 사찰이든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인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사람의 몸이 가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는 세상이 됐다. 한국에 없는 물건도 온라인을 통하면 곧바로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다. 맛 집으로 소문나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간다. 이제 이동(移動)도 수단이 아니라 온전히 마음의 문제가 되었다. 마음이 없다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필요도 없지만,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시간을 내어 찾아간다. 사회적 소통도 마찬가지다. SNS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만 모아낼 수 있다면 아무리 큰 일도 이루어지는 것이 요즘이다. 세상을 바꾼 광화문 광장의 촛불도 SNS에서 몇 명의 제안으로 이루어졌으며,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도 유투브에 올린 한 평범한 주부의 연설이 촉발했다. 이 같은 사례는 마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절에 사람이 없는 것은 거리가 멀거나 누가 말려서가 아니라 마음이 끌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감동은 마음의 교류를 통한 공명(共鳴)이다. 나의 고민, 기쁨, 감정을 누군가 알아주고 함께 한다고 느낄 때 상대방은 감동한다. 우리 불교 용어로 설명하면 교화(敎化)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종불구생 종법화생(從佛求生 從法化生), ‘부처님에 의지해 태어나 불법의 교화를 받아 살아가는 것이 불자라고 했다. 교화의 전제가 감동이다. 살인마앙굴리마라도 방탕한 젊은이 야사와 그 친구도 모두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움직여 출가했다. 그래서 감동은 교화다. 

정식으로 군 포교를 시작한지 50년이 되었다. 지난 50년을 자축하는 것 보다 앞으로 50년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에 더욱 힘을 모아야한다. 장병들이 그들의 아버지나 삼촌 보다 많은 것을 누리지만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행복한 청춘을 못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주느냐에 군불교 미래가 달려 있다.

[불교신문3450호/2018년12월19일자]

지용스님 논설위원·군법사·학생군사학교 학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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