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같은 차가운 파도를 견디고 등을 밝히다

 

최근 일반에 공개된 2.86km의 강릉 정동심곡 부채길을 걷다 보면 이제껏 보지 못한 바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숨어있던 아름다운 비경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8일 강릉으로 향했다. 2016년 10월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정동진은 한양의 정동쪽에 있다고 해서 정동(正東)이고 심곡(深谷)은 깊은 골짜기, 부채길은 탐방로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펼쳐놓은 부채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동진부터 심곡항까지 총 길이는 2.86km, 그동안 해안경비를 위해 군 경계근무 정찰로로만 이용되어 온 곳으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이곳에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2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로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고 군사 지역인 까닭에 국방부와 문화재청의 협의와 허가에만 2년의 세월이 소요됐다고 한다. 

강릉시에서 탐방로 정비를 마치고 개방한지 2년, 지난 6월에 벌써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았다고 하니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정동진 썬크루즈리조트 주차장은 심곡항보다 시작지점부터 약 500m는 급경사 내리막이기 때문에 수월하다. 강추위, KTX 탈선 등 한산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좁은 데크로드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다닌다. 솔 숲을 빠져 나가면서 바다가 펼쳐지고 거대한 바위를 끼고 첫 코너를 돌면서부터 감탄사가 시작된다. 

강릉 등명낙가사. 법당 터와 오층석탑만 남아 있던 이 곳은 이제 거찰의 면모를 갖췄다.

우측으론 켭켭히 쌓여진 층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놓여져 있고 왼편으로 마치 조각공원처럼 여려 바위들이 파도와 어울리며 서 있다. 지형상 걸어 다니기 어려운 길은 데크로드로 잘 정비되어 누구나 쉽게 다닐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절벽에 붙어 파도를 만나며 걷다보면 걱정했던 2.86km가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심곡항에는 다다르면 붉은 등대가 탐방객을 맞는다. 다시 정동진으로 향한다. 

정동진에는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아침 햇살을 받는 사찰이 있다. 신라시대 창건됐으나 조선중기 잠시 법등이 이어지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등명낙가사를 찾았다. 등명낙가사의 일주문 바닥 중앙에는 조그만 돌기가 튀어나와 있다. ‘정동(正東)’이라는 글자가 선명한 돌기는 이 사찰이 바로 우리나라 정 동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리는 표식이다. 등명낙가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고구려의 접경지역이자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던 전략적인 위치라는 중요성은 자장율사를 이끌게 했고, 스님은 이 곳에 절을 짓고 3기의 탑을 세웠다. 

신라시대 당시 사찰 이름은 ‘수다사(水多寺)’였다. 사찰 바로 앞이 동해바다 물천지이니 그런 이름을 붙일 만도 하다. 자장스님이 세웠다고 하는 석탑은 지상에 2기, 바다 속에 1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중 1기인 오층석탑은 지금도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 수다사는 이름을 바꾼다. ‘등명사(燈明寺)’가 그것이다. 중창불사를 통해 등명사는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명종대 시인 김극기(金克己)는 ‘불법의 높은 길이 푸른 연봉에 둘러 있고, 층대 위에 높은 사전(寺殿)은 겹겹이 공중에 솟아있다. 그윽한 숲은 그늘을 만들어 여름을 맞이하고 늦게 핀 꽃은 고운 빛을 머금어 봄을 아름답게 하여 봉우리의 그림자에 걸렸고 절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골짜기에 불어내는 바람에 전한다’고 등명사를 보며 노래했다. 

하지만 등명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비극을 맞이한다. 등명사가 폐허가 된 것은 여러 설이 내려온다. 이 가운데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이 ‘숭유척불’이라는 왕조 창건기조와 관련이 있다. 법당 터와 오층석탑 한기만 전해 내려오던 이 곳에 1956년 경덕스님이 불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법등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후 청우스님이 불사를 이어와 지금은 현재 등명낙가사에는 영산전·극락전·약사전·범종각·삼성각·요사채 등이 거찰의 면모가 갖춰져 있다. 등명낙가사는 옛 사찰명인 등명과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시는 보타낙가산의 이름을 따와 세워진 만큼 전각을 참배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나지막히 외친다. 

차가운 파도가 바위와 만나니 번뇌가 사라지듯 상쾌하다.

정동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통일신라 말 최고의 선지식인 범일(梵日, 810~889)국사가 851년에 창건하여 신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사굴산문파를 연 굴산사지가 있다. 거대한 산맥을 등지고 양지바른 너른 터에 당간지주만 홀로 우뚝 솟아 있다. 폐사지를 찾으면 적막함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다른 느낌이다. 거대한 정법의 기둥을 세워 곧 파란 하늘 높이 쏘아 올린 듯한 기개가 1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푸른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굴산사지 당간지주.

[불교신문3450호/2018년1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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