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지난번에 <보왕삼매론> 앞에 있는 다섯 가지만 말씀해주셨잖아요. 나머지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열 번째에 “억울해도 밝히려고 하지 말라”고 나와 있어요. 믿겨지지 않아요. 정말 그래야 해요?

서두르다 외려 오해 커질 수 있어 
흙탕물도 시간 지나면 가라앉고 
곧 맑은 물이 드러나게 되니까 
기다리며 마음 추스르란 얘기지

하하, 흥분하지 말고 여섯 번째 말씀부터 하나하나 새겨보자꾸나. ⑥“벗을 사귀되 제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제 잇속 차리면 믿음을 그르친다. 그래서 부처님은 ‘말갛게 사귀어 도타워지라’ 하셨다.” 무슨 말씀일까? 법정스님은 동무는 내 부름에 응답한 분신이라고 하셨어. 그 동무는 나를 마음을 다해 사귀었는데 나는 내 이로움을 좇아 만났다고 해봐. 머지않아 속셈을 들킬 수밖에 없어. 그 사람이라고 바보가 아닐 텐데 곁에 남아있을까? 할아비가 광주 텃골에 살 때 연로하신 마을 할머니를 뵈었어. 이 분이 “나는 배운 것도 없고, 돈도 힘도 없어요. 그러나 내겐 소중한 이웃과 동무들이 있어요. 그래서 마음이 놓여요”하시더구나. 나이 들어보니 돈이나 명예 따위는 별 게 아니더구나. 

⑦“남이 내 뜻을 고분고분 따르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고분고분 내 뜻을 따르면 잘난 체하며 나대려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서 숲을 이루라.’” 음식을 가려먹으면 몸이 조화를 잃어. 이처럼 뜻이 같은 사람하고만 어울리면 보고 듣는 폭이 좁아지고 그러면 생각이 얕을 수밖에 없지 않겠어? 

⑧“어진 덕을 베풀려면 대가를 바라지 말라. 대가를 바라면 잡된 생각이 움튼다. ‘덕 베풀기를 헌신짝 버리듯이 하라’.”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장사지 어진 마음으로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야. 

⑨“분에 넘치는 이익을 바라지 말라. 이익이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긴다. ‘적은 이익으로서 부자가 되라.’” 옛날에 어떤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데 웬 토끼 한 마리가 뛰어와 나무에 부딪쳐 죽었어. 그 뒤로 이 나무꾼은 나무하기를 그만두고 나무 아래서 이제나저제나 토끼가 와서 부딪쳐 죽기만 기다렸대. 남이 저러는 걸 보면 우습지? 문제는 제가 저럴 때엔 우스운 줄 모른다는 거야. 

이제 네가 문제 삼았던 말씀을 살펴보자. ⑩“억울해도 밝히려고 나서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려다보면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억울함으로 수행에 드는 문을 삼으라’.” 저 위에서 제 이로움을 생기는 게 곧 드러난다고 했지? 참다움 또한 감춰지지 않고 드러나. 그런데 서둘러 변명하려다가는 외려 오해가 커질 수 있어. 일어난 먼지와 흙탕물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고 곧 말간 하늘과 물이 드러나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며 마음을 추스르라는 말씀이야. ‘아휴, 저렇게 어떻게 살아’ 싶지? 그래도 두고두고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품이 열릴 거야.

[불교신문3449호/2018년12월15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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