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한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하다가 대뜸 하나님을 믿는 서구 나라들은 잘 사는데, 부처를 믿는 동양권 나라들은 못산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 시절 나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영향 아래 있었다. 중학교 때 읽은 두 권의 책이 한몫을 했다. ‘오멘’과 ‘천국의 열쇠’를 무척 재미있게 읽어서 가끔 집에서 성경책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당시에 내가 선생님의 말씀에 반발심을 가지고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어떤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선생님 말씀은 언뜻 보면 사실처럼 다가온다. 산업혁명 이후로 지금까지 인류사의 커다란 족적은 모두 서구문명이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다. 서구의 부강이 바로 수탈의 역사였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서구 열강들은 지난 과거에 먼저 선교사를 파견하고, 그 다음엔 군대와 상인을 보내서 식민지 국가의 인력과 자원을 쥐어짜 빼앗아갔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한쪽 손발이 없는 콩고인들의 사진이다. 벨기에가 식민지로 점령한 콩고에서 고무 체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현지인들의 손발을 자르는 처참하고 악랄한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예전에 뉴스에서 훼불소식을 접하면 콩고인들에게 행한 만행이 떠올랐다. 잔인하다. 종교와 관련 없는 혹자는 사람과 불상은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보라. 아이가 커터칼로 인형의 손발을 자른다면 우린 그 아이에게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의 성정부터 걱정할 것이다. 다행인 것은 불교신자들이 아직까지 한 번도 타 종교단체에 해코지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성탄절을 맞이해 사찰에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는 소식을 접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흐뭇해진다. 

불교 관련 책을 읽는데 예수님도 또 다른 보살이라고 한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맞는 말이다. 예수님도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하시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가 보살이다. 생명을 아끼고 보듬으면 모두가 부처이다. 오는 성탄절에도 많은 사찰에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플랜카드를 높이 걸었으면 좋겠다. 

[불교신문3430호/2018년11월14일자]

김영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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