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육바라밀이 참다운 불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들었어요. 근데 육바라밀이 뭐예요?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깨달음에 이르는 여섯 언덕으로
서로 거울지는 씨앗이며 꽃이지

 A ‘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 낱말로 ‘바라밀다’라고도 해. ‘깨달음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새겨. 육바라밀은 초기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여섯 가지(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지음 또는 언덕’이라는 말씀이지. 

보시바라밀에는 돈을 비롯한 재물을 나누는 재보시와 참다운 가르침을 나누는 법보시 그리고 사람 마음을 보듬어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보시가 있어.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을 비롯한 동식물은 혼자서 살지 못하고, 나 아닌 다른 생명이나 해를 비롯한 흙과 물, 불과 바람처럼 무생물에 얹혀산다는 거야. 이 눈길에서 보면 보시는 ‘서로 어울려 살리는 결’이지. 굳이 누가 누구에게 주는 거라고 헤아린다 해도 받았으니 되돌리는 것일 뿐 베푼다고 할 수 없어. 이걸 옹글게 알면 줬다는 생각이 일어날리 없지. 이게 불자들이 흔히 쓰는 말로 새기면 ‘무주상보시’야. 

지계바라밀은 계를 지키는 게 참다움으로 가는 첫걸음이며 뿌리지. 인욕바라밀은 참을성을 넘어서서 어떤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살림살이’야. 석가모니부처님이 계실 때 ‘부루나’라는 스님이 사납기 짝이 없는 수로국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리러가겠다고 나섰어. 이때 부처님은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부루나 스님에게 물으셨어. “그 나라 사람들은 사납고 모질다. 그대를 몰아붙이고 욕할 수도 있고, 돌멩이를 던지거나 몽둥이로 때릴 수도 있는데 어쩌려는가?” “칼로 찌르거나 베지 않으니 친절하다고 여기겠습니다.” “칼로 목숨을 빼앗는다면 어쩌려는가?” “덧없는 이 몸과 목숨은 언제든 버리고 떠나도 아깝지 않은데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니 고맙다고 여기겠습니다”라고 했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그릇됨에 빠진 이웃을 건져내야하니 어떤 어려움도 무릅쓰겠다는 다짐이야. 너와 나를 갈라 세우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씀이지. 홍수나 화재처럼 재난을 겪는 사람을 살리려고 뛰어드는 것도 인욕바라밀 가운데 하나야. 이처럼 인욕바라밀은 그저 참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 목숨 내걸고 짓는 살림살이, ‘살리는 삶’이야.

정진바라밀과 선정바라밀은 한데 묶어서 ‘어떤 벽에 부닥치더라도 참다운 마음을 놓지 않도록 올곧게’ 지어가는 삶이라 할 수 있으며, 지혜바라밀은 슬기롭고 어짊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바라밀을 거쳐 깨달음을 이루는 언덕이면서 씨앗이야. 모든 바라밀은 서로 거울지는 씨앗이면서 꽃이고, 열매이면서 줄기이자 가지야.

[불교신문3439호/2018년11월10일자]

변택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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