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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 교수의 한국범종 순례] <41> 김상립과 김성원 범종18세기 범종 제작은 장인 부자가 주도
  •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8.10.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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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를 대표하는 승장 사인비구(思印比丘)와 사장 김애립(金愛立)의 뒤를 이어 17세기말부터 18세기 중엽까지는 김성원(金成元)이라는 장인이 전라남도의 순천과 구례, 그리고 경남의 함안과 진주 지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제작을 하게 된다. 김성원은 실상사종(實相寺鐘, 1694)을 제작하였던 편수 김상립(片手 金尙立)의 아들로 선암사 종루종(仙巖寺 鐘樓鐘, 1700)을 비롯하여 불갑사종(佛甲寺鐘, 1702), 강희 44년명 대원사종(大原寺鐘, 1705), 옥천사종(玉泉寺鐘, 1708), 만수사종(萬壽寺鐘, 1720), 범어사종(梵魚寺鐘, 1728), 화엄사 구층암종(華嚴寺 九層庵鐘, 1728), 개인소장의 증광사종(澄光寺鐘, 1730), 선암사 응진전종(仙巖寺 應眞殿鐘, 1737) 등 현재까지 확인된 그의 작품은 모두 9점에 이른다.  

전라도 사장계 이끈 김상립 
전통형 범종 따르면서 변용 

조역하다 독자 활동 김성원
아버지와 달리 혼합형 ‘주조’

실상사종, 1694년 높이 122.5cm.

김성원의 작품은 당연히 그의 아버지였던 김상립의 범종을 통해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되지만 현재 알려진 김상립에 의해 제작된 범종과 김성원의 범종과는 그다지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 

우선 1694년 김상립에 의해 제작된 남원 실상사종(實相寺) 범종을 보게 되면 17세기 범종 중에서 총 높이 122cm에 이르는 대형에 속한 크기이다. 종신의 외형은 위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나팔처럼 더욱 넓게 퍼진 모습이 강조됐다. 

네발로 천판을 딛고 있는 용뉴는 머리를 들어 앞을 바라보고 있으며 뒤에 붙은 음통은 형식적으로만 작게 묘사되었지만 전통형 범종의 여운을 시사한다. 솟아오른 천판 외연에는 한 줄의 융기선을 주회시켰고 상대의 표현 없이 원권 범자문만을 돌아가며 시문하였다. 연곽은 종신 중단쯤에 치우쳐 네 방향에 배치되었는데, 연곽대에는 도식적인 당초문과 내부에는 화문좌(花文座) 중앙에 십자형으로 홈을 파 놓은 돌기된 종유가 9개씩 장식됐다. 

이러한 독특한 모습의 연뢰는 그의 아들인 김성원 종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분명히 아버지로부터의 영향이 느껴진다. 이 연곽을 중심으로 그 여백 면과 상부에는 구름문이나 화문 위에 별도로 떨어져 배치된 작은 보살입상을 일정한 형식 없이 장식하였다. 이 아래 부분에는 별도의 명문판을 군데군데 붙여 주조한 양각의 명문이 있으며 전통형 종에 보이는 당좌와 하대는 표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김상립의 범종은 부분적으로 전통형 범종을 따르고 있지만 세부 표현에서는 그를 변용한 새로운 형식화가 느껴진다. 김상립이 제작한 범종은 현재까지 실상사종 외에 확인되지 않지만 선암사종이나 불갑사종, 그리고 옥천사종의 명문에서 볼 수 있듯이 김상립의 이름을 항상 먼저 밝혀놓은 뒤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기록한 점은 바로 김상립이 당시로서는 전라도 일대의 사장계를 이끌던 대표적인 우두머리 장인이 아니었나 짐작된다. 

이러한 김상립이 누구로부터 주종 활동의 계보를 이었는지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의 주종 계보를 이은 아들들이 꾸준히 범종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 김상립의 아들은 불갑사종의 명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김수원(金守元 ↔ 金水元), 김성원(金成元), 김성봉(金成奉)의 3인으로 생각되지만 선암사종(仙巖寺鐘)에서는 김환태(金還泰)를 김성원의 동생이라고 기록한 내용이 확인된다. 이렇게 볼 경우 김상립의 아들은 4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실상사 종을 만들 때 김상립의 조역으로 참여했다가 옥천사종, 원효사종 제작에 다시 김성원의 조역이 되었던 김선봉(金善奉) 역시 김상립, 김성원으로 이어지는 주종 활동에 꾸준히 참여한 사실로 미루어 이들과 혈연 내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인물로 추측된다. 김성원 역시 처음에는 형제들과 함께 범종 제작에 참여하면서 조역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점차 독자적인 사장 활동을 하였다고 믿어지는데, 특히 실상사종(1694) 제작에 조역으로 참여한 김선봉과 한조를 이루면서도 그만이 독립적인 수장(首匠)으로 클 수 있었던 것은 김상립의 후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김성원은 처음에 선암사종처럼 김상립의 작품 경향과 달리 혼합형 범종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불갑사종에서는 다시 연곽이 생략된 조금은 변형된 전통형 종을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후 김성원이 만든 작품은 거의가 혼합형 종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 일관되는 양식은 쌍용의 용뉴와 각 용에서 직각으로 꺽인 양 다리의 발톱이 높게 표현되어 종의 천판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며 종신 상부를 돌아가며 원권(圓圈)의 범자문(梵字文)을 장식했다. 종신 중단쯤 내려와 있는 방형의 연곽대는 빗살문을 서로 엇갈리게 장식하고 내부에는 별모양으로 도식화된 화문좌 가운데 납짝한 종유를 표현하였다. 

특히 이 종유의 머리 부분을 마치 나사못 머리처럼 십자형 홈으로 파놓은 도식적인 모습이 주목되는데, 김상립이 제작한 실상사 범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이 되고 있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위패형(位牌形) 명문구를 장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원형 두광에 보관을 쓰고 합장을 한 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이들 보살상은 대의(大衣) 주변에 지느러미와 같은 장식이 첨가되는 제석 · 범천형(帝釋 · 梵天形) 보살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종마다 약간의 도상적 변화를 주거나 좌, 우향의 특별히 구분이 없는 자유로운 자세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상체에 비해 짧아진 하체, 경직된 의습에서 도식화된 느낌이 강하다. 이 밖에도 종구(鐘口)까지 하대(下帶) 및 별도의 장식 문양은 전혀 표현되지 않는 것도 김성원 범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범어사종, 1728년, 높이 128.8cm.

김성원은 현재까지 확인된 그의 작품으로 미루어 1700년부터 1737년에 이르는 40여년간 주종 활동에 종사했던 18세기 전반의 대표적인 사장계의 인물이다. 1710년에 만들어진 원효사종까지는 아직 미숙한 기량을 느낄 수 있으며 범어사 종루종(1728)에 와서야 본격적인 그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다고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범어사종은 그가 만든 작품 가운데 가장 큰 크기(128.8cm)이며 장인이면서 편수 통정(片手通政)이라는 관계(官階)를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시기부터 역량을 인정받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김상립의 종에 비해 양식적으로나 주조 기술면에 많은 차이를 주며 같은 시기의 다른 범종과 비교해도 그다지 역량이 뛰어난 장인은 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김상립의 두 아들인 김수원, 김성원과 도편수 김효건, 김성원의 동생 김환태 (金尙立子金守元,金成元,都片手金孝鍵,成元弟,金還泰,刻手千玄)’가 함께 제작한 선암사 종루종은 높이가 122.6cm로서 김상립이 만든 실상종과 거의 동일한 크기이다.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종 크기에 동일하다는 점은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암사종, 1700년, 높이 122.6cm.

명문에 의하면 1700년에 조계산 선암사 대종(曹溪山 仙巖寺大鐘)으로 800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한 것이라 기록되었지만 이 때 새로이 주조된 것으로 이해된다. 아직까지 김상립의 이름 앞에 그 아들들 이름을 밝힌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활동을 시작한 초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중국 종과 한국 전통형 종이 혼합된 혼합형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우선 용뉴는 하나의 몸체로 이어진 두 마리 쌍용이 각각 두 발로 천판을 딛고 있는 모습으로서 음통은 없다. 

용뉴의 크기가 왜소해지면서 귀가 쫑긋이 솟아올라 마치 족제비나 고양이 같은 형태로 변모된 점이 독특한데, 이는 추각명에 보이는 임화순(林化順)에 의해 후대에 보수된 부분으로 추측된다. 불룩이 솟아오른 천판에는 주물 구멍과 주물자국이 남아있으나 연판문과 같은 장식이 전혀 없으며 그 바깥쪽에만 두줄의 융기선을 주회하였다. 종신 상부에는 커다란 원권(圓圈) 안에 양각된 7자의 범자문을 둥글게 돌아가며 시문하였고 종신 중단 까지 내려온 커다란 방형의 연곽대를 네 곳에 배치하였다. 이 연곽대에는 상, 하로 합쳐져 파도문처럼 도식화된 엽문(葉文)을 장식하고 연곽 내부에는 이중의 연판으로 이루어진 화문좌(花文座) 가운데 얕게 돌기된 9개씩의 종유가 장식되었다. 

연곽과 연곽 사이의 종신 공간에는 위패형(位牌形)의 명문구와 보살입상을 번갈아가며 배치하였다. 위패형 명문구는 그 주위에 여의두(如意頭) 모습의 장식을 복잡하게 시문하였고 하단에 3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받침을 만들었다. 위패 내부에는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로 시작되는 양각의 명문이 있지만 다음 단으로 가면서 그 내용이 드문드문 빠져 있으며 일부는 바깥으로 삐쳐 나오는 등 제대로 주조되지 못하였음을 볼 수 있다. 

원형의 두광을 두르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합장한 모습의 보살입상은 화려한 보관과 양 어깨에 걸친 대의에는 화려한 꽃 문양과 흩날리는 의습에까지 격자문(格子文), 원문(圓文) 등의 문양을 빠짐없이 장식하였다. 종신의 하부에는 별도의 양각명문으로 구획된 명문대를 둥글게 배치하고 종구까지 당좌나 문양은 전혀 장식되지 않았다. 김성원이 제작한 종 가운데 유일하게 2008년 보물 1558호 지정 관리되고 있다.

[불교신문3436호/2018년10월31일자]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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