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마루는 매력이 있다. 질감 좋은 나뭇결과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온기와 윤기가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청마루는 트임과 소통의 공간이다.?대청마루의 앞쪽은 마당을 향해 열려있고 뒤쪽은 뒷마당으로 창이 오붓하게 나있다. 그리고 각 방의 앞 옆으로는 툇마루가 있다. 

툇마루는 여분의 공간이라서 덤으로 얻은 공간이다. 우리의 내면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원을 내어본다. 낡은 듯 무심한 듯, 누구에게라도 자리를 허락할 듯 보이는 너그러운 공간. 거기에 내려앉는 햇살과 바람은 평화롭게 통한다. 

젊은 시절, 세상을 바꾸려고 터무니없는 애를 쓰다가 만나게 된 문장,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하니 나를 바꾸라.” 이 문장 앞에서 주눅이 들었었다. 나를 바꾸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세상 바꾸는 일보다 더 거대한 일처럼 여겨졌던 까닭이다. 솔직히 말하면? 세상을 바꾸라는 말보다 더 난해했다. 그런데 단어 하나만 살짝 바꾸면 가볍고 쉬워진다. 툇마루의 존재처럼. 살짝 벗어나 보기. 나 대신에 기분으로. “세상은 바꿀 수 없어도 내 기분은 바꿀 수 있다.” 내가 남을 바꿀 수는 없으나 내 기분을 바꾸는 일은 그것보다는 쉬울 터이니. 툇마루에 앉아있으면 침착해지고 낙낙해지는 것처럼, 공짜로 얻어져 횡재하는 기분을 가져보는 것. 그것이 내 기분을 바꾸어보는 것의 힌트이다. 돈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창문을 여는 일과도 같다. 창문을 열고나면 산이 보이고 마당의 꽃이 보인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에서처럼 이 세상의 무용한 것들이 좋다는. 공기 꽃 농담 등등. 특별한 투자가 요구되지 않는다. 툇마루는 삶의 농담처럼 위트 넘치는 공간이라서 내 기분을 바꾸는 것의 비유와 잘 맞는다. 

애써 나를 바꾸기보다는 내 마음에 툇마루 하나 내어보자. 그리고 툇마루에서 만나는 걸로. 툇마루에 앉아서 오붓하게 담소를 나누는 걸로. 

[불교신문3431호/2018년10월13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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