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고
혼자 놀다
책을 읽다
깜박 졸다.
새소리에 깨어보니
새들은 간데없고
가을만 깊을 대로 깊었다. 
나무들도 아픈가보다

-김제현 시 ‘가을 일기’에서

가을은 ‘혼자’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 시인은 혼자 간소하게 밥을 먹고, 혼자 소일한다. 책을 펼쳐 읽다가 졸려 어느 순간 금방 잠에 빠져든다. 조금 심심한 듯해도 지루하지는 않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 있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에 이끌리지 않으니 부산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그리하여 한가함을 얻었다. 맑은 고독을 얻었다. 내내 적요한 시간을 살게 되었다.
잠깐 졸다 새가 우는 소리에 깨어나니 새는 날아가고 없고, 그 사이에 가을은 더욱 깊어졌다. 새는 포르릉 날아가고, 잎사귀는 졌다. 치렁치렁하게 꾸미고 치장한 것을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때이다. 세계도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때이다. 깨끗한 거울을, 푸르고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듯이.  

[불교신문3426호/2018년9월22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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