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세상 들어가는 방법은…

참 마음은 평등해 차별 없어 
공부할 때도 자신의 참마음이 
부처님인 줄 알고 수행해야… 

이번 강설은 ‘돈오돈수’의 ‘돈오’를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과 연관시켜 풀이하겠습니다.

원문번역: 문) 색(色) 자체가 공(空)이고 범부 자체가 성인인 것이 돈오입니까? 답) 그렇다. 문) 어떤 것이 색이며 공이고, 어떤 것이 범부이며 성인입니까? 답) 오염된 생각이 있는 마음은 색이요 오염된 생각이 없는 마음은 공이다. 오염된 생각이 있는 마음은 범부요 오염된 생각이 없는 마음은 성인이다. 또 참다운 공에서(眞空) 묘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색이라 하고(妙有), 그 색은 실체가 없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공이라 한다.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색의 성품 자체가 본디 공이라는 뜻이지, 색이 사라지면서 공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색이라고 말한 것은 공의 성품 그 자체로 색이지, 색이 색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설: 이 장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돈오돈수’의 입장에서 말하는 ‘돈오’를 말합니다. 돈오란 망념을 떨쳐 단숨에 마음을 깨치고 보니, 거기서 드러난 마음 그 자체가 부처님 마음이요, 그 마음으로 보는 세상이 온갖 차별이 떨어진 부처님 세상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오’하여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색으로 드러나는 모습 그 자체가 실체 없는 공이니, 색으로 드러나는 범부의 모습도 저절로 실체가 없는 공인 줄 알기에 성인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입관을 가지고 색과 공, 범부와 성인에 대해 “오염된 생각이 있는 마음은 색이요 오염된 생각이 없는 마음은 공이다. 오염된 생각이 있는 마음은 범부요 오염된 생각이 없는 마음은 성인이다”라는 대주스님의 답변 첫 문장처럼 색과 공, 범부와 성인을 차별하여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망념으로 드러난 모습을 실체화 하여 집착하고 분별해서 말하는 중생의 영역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주스님은 이러한 중생의 망념을 시원하게 깨뜨립니다. “참다운 공에서 저절로 빛이 나 텅 빈 마음(眞空) 그 빛 속에 인연이 주어지는 온갖 모습이 묘하게 드러나니(妙有) 이 드러난 모습을 색이라고 한다. 텅 빈 마음속에 그림자처럼 드러난 그 색은 인연 따라 잠시 모습을 드러냈을 뿐 실체가 없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공이라 한다”라고 덧붙여 근본 마음자리를 드러내는 돈오의 입장과 부처님의 영역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돈오의 입장에서 말하는 ‘공’은, ‘색의 성품 그 자체가 본디 공(色性自空)’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인데, 그 까닭은 눈앞에 드러난 색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많은 인연이 모여 임시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인연을 의지하여 드러난 모습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실체가 없는 색 그 자체의 성품이 공(色性自空)’이라는 말이지, 어떤 실체가 있던 색이 없어지면서 공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非色滅空). 

이것은 우리한테 익숙한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도 같은 내용입니다. ‘오온’은 중생의 몸과 마음작용을 말하는데, 이것은 많은 인연이 모여 잠시 생겨났을 뿐 그 실체를 분석하면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아 공과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체 없는 몸과 마음 이 모두가 공이다’라고 풀이해야지 무엇이 바뀌어서 공이 된다는 느낌을 주는 ‘오온이 공하다’고 풀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주스님 역시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색의 성품 자체가 본디 공이라는 뜻이지, 색이 사라지면서 공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색이라고 말한 것은 공의 성품 그 자체로 색이지, 색이 색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실체 없는 우리의 몸과 마음 그 자체가 공이라는 말이지, 몸과 마음의 모습이 바뀌어 공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돈오의 입장에서 말한 ‘색’은, ‘공’의 성품 그 자체에서 저절로 인연이 모여 드러나는 색이라는 것입니다(空性自色). 왜냐하면 실체가 없는 색이 어떤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非色能色). 색이 공이고 범부가 성인이듯 참 마음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습니다. 이처럼 공부할 때도 자신의 참마음이 부처님인 줄 알고 수행을 한다면, 이 공부 속에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부처님의 세상으로 들어갈 날이 있을 것입니다.

[불교신문3426호/2018년9월22일자]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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