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니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김광균 시 ‘와사등’에서

와사등은 가스등을 일컫는다. 해가 떨어지고 거리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한등(寒燈)이 켜졌으나 고단함과 슬픔과 서러움의 그림자만 길게 늘어져 있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갈 곳을 알지 못하는, 고독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비애를 그렸다. 시인에게 당시의 도시 공간은 공지(空地)에 다름 아니었다. 상실의 공간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 시인은 도심의 건물을 묘석(墓石)에 빗대었고, “폐가(廢家)와 같은 밤차에 고단한 육신을 싣고”라고 써서 도시를 오가는 밤차의 공간을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집으로 인식했고, 또 활기 없는 도시의 거리를 “창백히 여윈 석고의 거리”로 바라보았다.

김광균 시인은 1930년대 우리의 시에 회화적 요소를 도입해서 소리조차도 모양으로 바꾸어 표현했다. 도시적인 감각을 세련되게 표현한 것도 김광균 시의 특징이었다. 

[불교신문3424호/2018년9월15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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