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기도일에 신도회 신임 임원 임명장을 드렸다. 시골 절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신도회장이나 간부들은 소임을 맡는 순간부터 후원에서 살다시피 해야 한다. 누구나 절에 오면 법당에 가서 기도하고 싶어 하지, 공양간에서 허드렛일하며 대중들 뒷바라지하는 마음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 절도 마찬가지다. 누가 선뜻 나서 신도회 간부를 맡을 사람도 없으니, 주지가 삼고초려 정도를 해야 어렵게 마음들을 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살심을 내어 그 힘든 소임을 맡아주시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이다. 

이번에는 공양주 임명장과 법당보살 임명장도 같이 드렸다. 누가 공양주에게 무슨 임명장을 드리느냐고 피식 웃었다. 물론 신도 회칙 구성에는 공양주나 법당보살, 혹은 부목 소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신도회 임원들이 사찰 전체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늘 부처님께 공양 지어올리고, 법당을 청소하며, 도량을 관리하는 소임도 그에 못지않다. 몸과 마음이 지쳐 부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러 온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고 다독여 드리며 부처님을 대신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 분들이 어떻게 참배객을 맞이하고 안내하느냐에 따라 그 사찰의 이미지나 불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바로 사찰의 얼굴이요, 부처님의 대변자인 것이다. 

우리 절 공양주 혜련화 보살님은 매 철마다 용맹정진 들어가는 수행자셨다. 여기 오실 때도 봉화에서 정진하는 수행공동체에 가려고 짐을 꾸려 놓았다가, 도움을 청하니 바로 오셨다. 공양주 임명장을 드리는 날, 온 대중이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드렸다. “스님, 언제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임명장을 주시면 어떡해요?” 하시는 보살님께 “아마 대한민국에서 공양주보살님과 법당보살님께 임명장 드리는 절은 우리 천은사 뿐 일겁니다. 우리 모두 멀리 있는 부처님 찾는다고 애쓰지 말고, 내 곁에 있는 부처님들을 잘 모시도록 합시다.” 축사를 하고 법당을 나오니, 솨아~ 지나가는 바람에 산천초목들이 다 박수를 친다고 야단들이다. 

[불교신문3423호/2018년9월12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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