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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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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문 그 곳] <46> 오산 독산성과 보적사나지막한 독산성 동문 들어서니 부처님 뜰이…

 

평야에 홀로 솟은 오산 독산성은 
삼국시대 축성된 전략적 요충지

조선시대 정조의 사부곡(思父曲)
임진왜란 때는 권율장군 이야기  

나지막한 독산성 성벽이 오른쪽 아래로 보이고, 그 위에 살포시 자리한 보적사.

지난 8월23일 예정되었던 이번 출장은 일찍이 포기했다. 몇 년 만에 한반도를 제대로 강타한다는 태풍 솔릭의 상륙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전국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 숨죽이고 있었다. 초속 40m면 열차도 탈선한다는데, 제주를 통과한 솔릭의 최대 풍속은 60m에 이르렀다. 예상대로라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도시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다.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는데…. 유동적이라는 태풍의 실체를 맞닥트리지 못한 상황. 두려움이 더 큰 공포를 일으켰다. 하지만 실제는 기상청의 오보에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이후 조정된 출장 날은 4일 뒤인 27일. 이후로도 비예보가 계속 있어 더는 미룰 수 없어 경기도 오산 독산성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출발했을 때는 비가 자자 들었는데, 오산에 가까워질수록 빗줄기가 제법 굵다. 밑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 곳 주민에게 물었더니 아침부터 쭉 이렇게 비가 계속오고 있다고 했다. 요행을 바라던 희망은 깨지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바로 독산성을 올랐다. 여러 해 전에 와봤던 곳이라 가까이 갈수록 기억은 또렷해 졌다. 

①독산성과 보적사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해탈의 문’. 산성에서 보면 동문이요, 사찰에서 보면 일주문의 역할을 한다.

독산성과 세대대지는 사적 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국시대 백제에 의해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독산은 나지막한 산이지만, 오산에서 가장 높은 산(해발 208m)이다. 수원과 오산 그리고 화성에 펼쳐진 평야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성 둘레는 1100m다. 조선시대 정조 16년(1792년) 대규모 개축이 이뤄졌는데 성문 4개와 암문 1개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조선의 여러 왕들이 친히 독산성을 점검했는데, 이 가운데 사도세자와 정조에 얽힌 이야기가 눈에 띈다. 왕 위에 오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융릉을 자주 행차했는데 정조14년 행차 때에는 사도세자의 흔적을 쫓아 독산성에 올랐다. 

②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승전과 관련하여 성 안 꼭대기에 세워진 세마대.

영조 36년(1976년) 온양온천 행차 후 환궁하던 사도세자는 독산성 인근에서 강의 범람으로 성 안의 운주당에서 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이때 사도세자는 성 안의 노인들을 모아 애로사항을 살피고 창고의 곡식을 나눠주었다. 정조 또한 운주당에 들려 아버지가 행했던 것처럼 노인들을 만나고 쌀과 옷감을 하사하고 아버지를 기렸다.

먼저 향한 곳은 독산성의 동문. 성벽 사이를 사람의 통로만큼 띄어내고 그 위를 널찍하고 두툼한 돌로 덮은 모양새다. 하지만 천장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전에는 온전한 문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출한 규모에 이렇다 할 장식도 없는 이 문을 먼저 찾은 이유가 있다. 독산성으로 보면 동문이지만 보적사로 보면 일주문의 역할을 한다. ‘해탈의 문’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들어서면 바로 보적사 대웅전 앞이다.

③독산성에서 내려다본 주변의 모습. 비구름으로 흐릿하나, 맑은 날은 주변 경관이 또렷하다.

보적사는 삼국시대 독산성을 축성하고 현재의 터에 전승을 기원하며 창건했다. 이후 여러 차례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하다 조선시대 정조가 용주사를 세우면서 복원했다. 현재는 법당 정면에 3층 석탑이 조성되어 전통사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법당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세마대가 있다. 돌아 올라갔음에도 대웅전과의 거리가 100m도 안 된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라도 관찰사 권율 장군이 2만의 병력으로 평지에 홀로 솟은 독산성에 진을 치고 왜적을 맞이하였다. 적장은 벌거숭이산에 위치한 독산성은 물이 부족할 것 이라는 생각해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 보내 조롱하면서 성안에 식수가 동나기를 기다렸다. 이에 권율 장군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위로 끌고 가 흰쌀을 말에 끼얹으며 목욕을 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성에는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착각해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때 말을 씻긴 산꼭대기를 세마대(洗馬臺)라 하고 이곳에 전각을 세웠다. 

④세마대 주변 벤치. 비구름과 비에 젖은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준다.

[불교신문3421호/2018년9월5일자] 

오산=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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