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본 뒤에 간다면

가는 것은 헛일일 것이요

만일 보지 않고 가는 것이라면

보려는 생각 없어야 되리라.

- <대승광백론석론(大乘廣百論釋論)> 제7권 중에서

내 친한 스님 사제가 두 달 전부터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경남 사천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까지 하루 삼천배로 길을 껴안으며 간다. 무슨 발원이 있어서도 아니고 뭔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거나 종단의 자정을 바라며 하는 삼보일배도 아니다. 그냥 오체투지로 삼보일배를 해보고 싶어서 길에서 자고 길을 껴안으며 가는 중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참 존경스럽다고 했다. 수행이란 그런 것이리라. 바라는 것 없이 그냥 하는 것.

아침 포행도 그렇다. 살을 뺀다든가 어디까지 몇 시간 만에 도착한다든지 하는 목적 없이 걷다 보면 새소리도 들리고 멧돼지나 다람쥐도 만나고 풀잎에 인 이슬도 보고 햇살도 만끽하는 법이다. 목적을 놓아야 세상이 비로소 내 안에 들어온다. 세상을 진정 껴안게 된다. 함 없는 사랑이라고 할 것이다.

[불교신문3417호/2018년8월22일자] 

도정스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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