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천보스님 ‘범종 장인’의 시작을 알리다

 

▶ 가평 현등사 소장 봉선사종

17세기 각 사찰에서는 승려 장인들의 범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평 현등사 소장 봉선사종.

조선 후기의 범종의 시작이자 17세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승려 장인의 범종이 바로 가평 현등사(懸燈寺)에 소장된 만력(萬曆) 47년명 범종(1619)이다. 본래 봉선사종(奉先寺鐘)으로 제작된 것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현등사로 이전되었다고 전해진다. ‘봉선사종명병서(奉先寺鍾銘幷序)’로 시작되는 종신의 명문에 의하면 ‘세조를 위해 정희왕후(貞熹王后)와 예종(睿宗)이 세운 봉선사가 임진왜란 때 훼손되자 1613년에 법당을 중수하고 1617년에는 삼세상(三世像)을 조성하였으나 종이 없어 1618년에는 권선문을 돌려 시주를 받아 1619년에 주성했다는 내용과 시주 내역, 시주자 이름’이 종신에 가득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천보(天寶) 스님은 종 제작을 총괄한 제작자이면서 명문을 쓴 화주(化主)로 기록되었는데(化主天寶謹作 書刻), 종 형태와 문양, 종에 쓴 명문 등의 유사성을 통해 이후에 만들어진 고견사종(1630)과 보광사종(1634)을 주성한 설봉 천보(雪峰天寶)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천보스님이 제작한 종의 명문을 분석해 보면 1630년에 만들어진 고견사종에는 ‘도대장미지산설봉사문천보(圖大匠彌智山雪峯沙門天)’라는 명칭으로 치죽, 득남, 득일(緇竹, 得男, 得一) 스님의 조역을 받아 제작하였고 다시 보광사종(1634)에는 ‘주성도대장설봉자(鑄成圖大匠雪峯子)’ 라는 설봉자란 호와 대장의 직함을 함께 사용하였다.

검은 색조를 띤 현등사종의 전체적인 외형은 한국 전통종 보다 중국종 계열을 따르고 있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불룩이 원구형으로 솟아오른 천판 위로는 음통 없이 두 마리의 쌍용으로 구성된 용뉴와 그 바깥의 주위에는 사각으로 된 복판의 연화문을 상대(上帶)처럼 둥그렇게 시문하였다. 종 몸체 중단에 둘러진 3줄의 융기선 횡대를 중심으로 위 아래로 나누어 윗 단에는 위로부터 연판문대와 사다리꼴로 이루어진 연곽대, 그리고 그 옆으로는 범자문과 대좌 위에 앉은 불좌상(佛坐像)을 번갈아 가며 시문한 모습이다. 특히 불좌상 옆으로 위패형의 범자문대를 두고 그 옆에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과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이란 문구를 도드라지게 새기 것은 이후 조선후기 범자 다라니의 선행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종신의 중단 아래로는 3줄의 융기선을 둘러 3구로 구획하였는데 바로 아래에는 연당초문대를 둘렀다. 그리고 그 아래로 종신 전면을 돌아가며 긴 내용의 양각명이 새겨져 있다. 이 명문구 아래로 다시 1줄의 융기선을 돌리고 종구에서 조금 떨어진 상부 쪽으로 파도문과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격동적인 모습의 용무늬를 번갈아가며 빽빽이 시문하였다. 이처럼 종신 전체를 빠짐없이 장식하는 것은 중국종의 특징이지만 연판문과 중대의 보상화당초문, 하대의 파도문 등은 조선 전기의 해인사종(1491)의 문양을 계승하거나 약간 변형시킨 모습이다. 1469년에 만들어진 봉선사 대종과 달리 법당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종은 천보스님이 만든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준작으로 의미가 깊으며 이후 11년이 지난 고견사종에 이르면 천보스님의 작품성이 더욱 두르러져 승장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정립해 나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 거창 고견사 소장 견암사종

거창 고견사 소장 견암사종.

고견사 대웅전에 보관된 이 종은 1630년에 견암사(見岩寺) 종으로 제작한 것이다. 창건 당시에 사명은 고견사(古見寺)였지만, 1271년 고견사가 거제에 이속되면서 견암사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운현, 김복, 종해(雲賢, 金福, 宗海) 세 분의 스님이 중창하면서 고견사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종의 전체 높이는 97.2cm로써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큰 편이다. 전체적으로 옅은 붉은색을 띤 종의 외형은 천판에서 종신 중단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하단에서 갑자기 직선으로 내려와 마치 포탄을 엎어 놓은 형태이다. 둥글고 높게 솟은 천판 위에 음통이 없이 쌍용의 용뉴(龍)를 표현한 중국종 계열을 따랐다. 특히 용의 이마에는 다른 종에서 볼 수 없는 ‘왕(王)’자를 새겨 놓은 점이 흥미롭다. 

종신은 3줄의 횡선을 이용하여 상ㆍ하로 구분되며 그 안에는 다양한 문양을 시문하였다. 구획된 상단부에는 천판 아래로 넓은 연판문을 장식하였고, 그 밑으로 연곽 4개가 사다리꼴 형태로 배치되었다. 연곽대는 당초문을 시문하였으며, 그 안에 9개의 만개된 연뢰(蓮)를 표현하였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불좌상(佛坐像), 불탑(佛塔), 범자문, 위패(位牌) 등을 배치하였는데, 4면 모두 동일한 형태이다. 그 아래에는 연화당초문을 사용하여 띠 장식을 첨가하였다. 불좌상은 방형과 연화로 구성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형태로 구품인(九品印)의 수인을 취하였으며 연꽃 위에 표현된 3층의 불탑은 탑신과 옥개석까지 잘 구비한 모습이다. 이러한 장식은 다른 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예로써 천보스님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상단에 비해 하단은 그 구성이 단순한 편이다. 구획된 하단에는 제작연대를 기록한 조성기를 기준으로 위에는 연당초문과 아래에는 파도와 운룡문을 장식하였는데, 역동적인 용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고견사 종의 명문은 조선후기 일반적인 동종과 다르게 사찰의 연혁, 동종 제작에 소요된 실제 기간, 제작에 들어간 물품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기문(記文) 형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작 장인으로 ‘도대장미지산설봉사문천보(圖大匠彌智山雪峯沙門天)’와 조역으로 ‘치죽, 득남, 득일(緇竹, 得男, 得一)’ 이 참여한 점에서 천보스님이 수장(首匠)이 되어 이 종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  파주 보광사 숭정7년명 동종 

파주 보광사 숭정7년명 동종.

보광사 대웅전 안에 보관된 종으로서 종신에 기록된 명문에 의하면 숭정7년(崇禎七年)인 1634년에 천보스님에 의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630년에 만들어진 고견사종과 달리 ‘대장설봉자(大匠雪峯子)’란 직명과 이름을 사용하였다. 종신은 아래로 가면서 약간씩 밖으로 벌어진 모습에서 고견사종보다 현등사종의 외형을 따랐다. 불룩이 솟아오른 천판 위로는 음통 없이 두 마리의 역동적인 쌍용으로 구성된 용뉴가 네발로 천판을 딛고 있는 모습이다. 그 외연에는 복잡하게 시문된 사각의 복판연화문이 상대처럼 둘러졌다. 종신은 중단과 하단을 돌아가는 3줄의 융기선 횡대(橫帶)로서 종신을 3단 구획하여 상단에는 방형의 연곽대와 보살입상을, 중단 부분에는 운룡문과 긴 내용의 양각 명문을 새겼고, 종구에서 약간 위로 올라온 곳에 하대처럼 둘러진 하단의 문양대에도 용문과 파도문을 번갈아 가며 유려하게 시문하였다. 

위가 좁은 사다리꼴로 표현된 연곽대에는 연당초문을 시문하고 연곽 내부에는 연화좌(蓮花座) 중앙에 작은 돌기가 표현된 9개씩의 연뢰를 배치하였다. 이 연곽과 연곽 사이의 여백 면에는 보살입상을 중심으로 그 좌, 우측에 범자문을 양각하였다. 4구의 보살입상은 원형 두광에 통견(通肩)의 대의를 걸치고 합장한 모습으로서 연화좌 위에 시립한 채 몸을 우측으로 돌린 유려한 자세이다. 범자문은 종신 상부에 1단 내지 2단의 범자문 띠를 두르거나 독립된 원권의 범자문으로 주회시켜 장식하는 일반적인 17세기 범종 범자문과 달리 원권 없이 종서(縱書)로 이루어진 점이 색다르다. 양각의 범자문 앞에는 현등사종에 사용된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과 ‘육자광명진언(六字光明眞言)’이 기록되었다. 중단의 융기선 횡대 아래에는 유려한 모습의 운룡문(雲龍文)이 고부조 장식되었으며 이 운룡문으로 이루어진 문양판 사이로 양각 명문을 새겼다. 아래 단에는 1줄의 융기선을 두르고 하대처럼 표현된 종구의 윗부분에는 파도문과 운룡문을 번갈아 가며 빽빽이 시문하였다. 쌍용의 용뉴와 용문, 파도문 등을 종신 전체에 빠짐없이 꾸민 중국종 계열의 천보스님 범종의 특징이 잘 보이지만 다른 종에 비해 더욱 도드라진 문양이 특징적이다. 고견사 종과 유사한 92.5cm의 크기이지만 종신 상부의 한쪽 문양 부분이 내려앉아 마치 손상된 듯 굴곡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 종이 제작 당시부터 이미 주조 결함이 생겼던 것을 그대로 봉안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불교신문3415호/2018년8월15일자]

최응천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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