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현실…미륵불 만나 평온을 기원하다

안성 매산리 석불입상. 잘 쓸고 닦은 반듯한 모습이다. 방문한 날 아쉽게도 보호각의 보수공사를 위해 비계가 설치되고 있었다.

먹구름이 드리운 아침이었다. 안성으로 향하는 길에 빗줄기도 오락가락 했다. 도착한 곳은 매산리 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 안에 높이 5.6m의 거대한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머리 위는 고려 초기에 유행한 사각의 보개를 쓰고 있어 조성 시기를 짐작케 한다. 오른손 모양은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앤다는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주변은 정갈하게 낮은 담장을 둘렀고 안에는 웃자라긴 했지만 잔디가 곱게 깔려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고 있음이 분명하다. 

안타깝게도 미륵 주변은 보수공사를 위한 임시 가설물인 비계 설치가 한창이다. 하지만 미륵의 상태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다. 고개를 한참 갸웃 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오셨냐고’ 말을 건네는 현장소장을 만날 수 있었다. 누각에 비가 새서 지붕을 열어 그 안을 살펴 볼 것 이라고 했다. 이때 동네 할머니가 담장 너머에서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작업자들을 부른다. 살얼음이 얼려 있는 큰 생수병에 탄 커피다. 현장소장에 따르면 동네 어른들이 미륵당에 관심이 참 많다고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어르신도 있다고 한다. 여기 미륵당은 마을의 터줏대감이자 마을사람들의 신앙의 공간인 것이다. 미륵당을 향한 주민들의 애정 때문인지 지금도 이 지역은 ‘미륵당마을’ 이라 불리고 있다. 

①봉업사지 오층석탑과 당간지주. 주변 농지와 비닐하우스 등으로 체계적인 발굴과 보존이 아쉽다.

직선거리로 800m쯤 떨어진 곳에 봉업사지의 오층석탑(보물 제435호)와 당간지주(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9호)가 있다. 봉업사는 양주 회암사, 여주 고달사와 더불어 고려시대 경기도 3대 사찰로 꼽히는 대가람이다. 원래는 신라시대 화차사 였으나, 고려 4대왕인 광종이 대대적인 불사를 마치고 태조 왕건의 초상화를 봉안해 진전(眞殿)사찰로 모습을 일신한다. 

진전사찰은 왕실, 즉 국가직영사찰을 의미한다. 이는 고려초기 지방호적 세력이 강성했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태조의 영정을 모신다는 명분으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에서 수도인 개성과 남북으로 잇는 교통의 요지를 확보함으로써 왕권 강화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지근거리임을 감안하면 거대 미륵이 봉업사 경내에 자리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그럼 이 거대 미륵은 누가 조성한 것일까? 광종이 조성했다면 아버지가 세운 나라를 미륵부처님의 힘을 빌려 한 단계 더 도약 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것이고, 지역호족이 세웠다면 그 세력이 주변에서는 독보적으로 강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봉업사와 매산리 미륵불의 관계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②궁예를 닮았다는 기솔리 석불입상의 오른쪽 미륵(일명 궁예미륵). 입술이 살짝 벌려져 있는데 윗입술이 화살의 모습을 닮았다.

이어서 찾은 곳은 기솔리 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호). 기솔리 쌍미륵으로 불린다. 여기도 크기가 5m에 이르는 거대 미륵 2구가 나란히 서 있다. 커다란 돌기둥에 부처님의 전체적인 모습을 간략하게 조각했다. 왼쪽은 상대적으로 곱고 부드러움이 전해진다. 오른쪽에 자리한 미륵은 후고구려의 궁예와 연관 지어져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성이면 한강에서도 남쪽인데 여기에 무슨 후고구려 이야기가? 시간은 신라 말로 거슬려 올라간다. 쇠락한 신라에서 독자세력을 형성했던 기훤의 본거지가 안성인데, 궁예는 한때 기훤에게 의탁했다 훗날 배신하고 후고구려를 세우니 안성과 궁예사이에는 연결고리가 분명 존재한다.

궁예라는 이름은 활의 후예를 뜻하는데 오른쪽 미륵은 남성미의 투박함이 있을 뿐 아니라 미륵의 입모양이 활을 문 형상을 하고 있다. 궁예는 스스로 다음생의 부처인 미륵불임을 자처했다. 

이 외에도 안성은 약사여래처럼 약병을 들고 있는 친근하고 아담한 대농리 미륵도 있고,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안성 시내의 아양동 미륵도 있으며, 과수원 안에 위치한 동촌리 미륵도 있다. 이렇게 발견된 미륵만 20여 구에 이른다. 

③안성 칠장사 명부전 뒤편에는 궁예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이 지역에 궁예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왕이든 왕을 꿈꾸던 이든, 변변한 이름조차 없는 개똥이 말똥이 같은 민초도 먹구름이 드리운 날은 맑게 게인 하늘을 그리워한다. 민초의 눈높이에서 본다면 먹구름 드리운 날, 생애 경험한 가장 맑고 화창한 하늘아래 풍광이 자신이 그려볼 수 있는 미륵의 세계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누구나 꿈꾸는 극락정토는 너무 높은 곳의 아름다운 세상이 아닌 스스로 겪어본 가장 행복했던 날의 재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안성이란 지명이 탈 없이 편안한 고장이란 뜻이니, 언제나 탈 없기를 기도하는 마을어른들의 모습에서 고단한 현실세계에 미륵불을 모셔와 평온하고자 했던 옛 조상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④미륵당을 보수하는 사람들에게 집에서 탄 커피를 전해주는 마을주민.

 

⑤기솔리 석불입상 2구는 나란히 서 있어 마을입구의 장승을 떠올리게도 한다.

[불교신문3413호/2018년8월8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