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류의 온갖 집착을 보면 

몸은 마치 독사가 담긴 광주리와 같으니, 

우리들은 반드시 멸도(滅度)하여 

등불이 꺼지듯 마음을 청정하게 하려네. 

- <가섭결경> 중에서

한가하니 누워 보는 하늘은 잔뜩 흐려도 평안하다. 혼자 듣는 새소리는 조용한 가운데 경쾌하다. 다시 비가와도 좋겠고, 다시 해가 바짝 떠도 좋겠다. 봄 가뭄에 심은 고추모종이 말라죽을까 걱정스럽다가 다행스럽게 샛별 같은 꽃이 피었더랬다. 비 온 뒤 애호박도 몇 개 열려 낮에 끓인 된장국이면 저녁이 만족스러웠다.

진땅에 풀은 쉬이 뽑혀 좋은 날, 풋고추도 몇 개 땄으니 혀끝이 알싸한 혼자만의 연애다. 싱거운 맛도 더러 있겠으나 풋고추란 말 한 마디에 벌써 오금이 맵게 저렸으니 늦은 나이도 새로운 청춘이 아닐 손가. 다만 이 모든 것이 온갖 집착의 불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스름이 이젠 땀에 퇴색된 좌복처럼 정겨워져서 점점 나이가 든다. 새소리가 말벗처럼 정겨워져서 세상을 걸어 여기만큼 온 줄도 안다.

[불교신문3411호/2018년7월25일자] 

도정스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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