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십문화쟁론>은 불교의 여러 가지 학설을 열가지로 분류해서 서로 다른 주장의 통합을 시도한 탁월한 명저다. 예로부터 ‘백가지 서로 다른 쟁론을 화해시켜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게 한다(和百家之異諍 歸一味之法海)’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려의 의천은 원효를 유난히 존경해서 ‘화쟁국사(和諍國師)’로 추증하고 분황사에 ‘화쟁국사비’를 세우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저술은 완본형태로 남아있지 않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해인사에 남아있는 2권1책의 목판본이다. 이 책에는 10문 중 9.10.14.15문과 불분명한 1장 등이 전한다. 나머지는 최범술 이종익 선생 등이 원효의 다른 저술인 <열반경종요> 등에서 찾아낸 주장을 합쳐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이 원효의 대표적 저술로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실의 세계는 피아(彼我)와 염정(染淨)과 진속(眞俗)이 이원적으로 대립한다. 원효는 이 대립을 상대적 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예를 들면 장님은 코끼리의 다리나 배를 만져보고 기둥이나 벽 같다고 주장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옳지만(皆是) 전체적으로는 틀린 것(皆非)이다. 그러므로 조금씩 다르더라도 서로를 인정해야 다툼이 사라진다. 이것이 화쟁의 원리다.

화쟁론은 다양한 불교종파가 우열선후를 다투는데 대한 통합론으로 제시된 것이지만 현실사회의 이론적 이념적 다툼을 화해시키려는 원리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대립 같은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는 원리를 제공한다. 똑같은 인간이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르듯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不一不二)인 것이 세상이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서로 다른 것끼리 평화가 가능해진다. 학자들은 화쟁론을 한국인이 제시한 최초의 평화론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요즘 한반도는 남북대화 북미대화 등을 통해 대립을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를 추구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화쟁론에서 많은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

[불교신문3409호/2018년7월18일자] 

홍사성 논설위원·시인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