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손길 내민 보살님

 

대승불교 가치 대표하는 보살
삼재팔난 겪는 중생 구제하고
망자 극락정토로 인도해주기도

‘수월관음도’ 당나라 주방 창안
우리나라 고려시대 특히 유행
관음지장보살 병립도도 조성

①1323년 조성된 고려 수월관음도, 현재 일본 센오쿠하코칸에 소장돼 있다.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이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한다’는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외면 그 음성을 듣고 중생들을 구제해 준다고 하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처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Avalokitesvara)은 자비를 덕으로 삼고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며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보살의 이상을 가장 잘 보여준다.

관세음보살은 관음(觀音)·관자재(觀自在)·광세음(光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라고도 불린다. 대승불교의 무수한 보살 중 중생에게 가장 친근하고 오랫동안 널리 신앙되어져 온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이다.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은 일찍이 인도에서 시작됐다. 중국으로 관음신앙이 전래된 때는 관음보살 관련 경전이 한역(漢譯)되던 2세기 후반~3세기 초 무렵이다. <무량수경(無量壽經)>(252년 한역) 및 <법화경(法華經)>(406년 한역) <화엄경(華嚴經)>(60권본, 418~421년 한역) 등이 번역되면서 본격적으로 신앙됐다. 

관음신앙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과 <화엄경> ‘입법계품(入法戒品)’을 근거로 하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팔난(八難), 즉 큰 바다에서 나찰을 만난다던지 험한 산속에서 도적을 만나는 것과 같은 재난을 당했을 때 관음보살이 구제해 준다고 하여 관음보살의 구제력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관음보살은 남쪽 바닷가에 위치한 보타락가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한다. 관음보살의 주처인 보타락가(補陀落迦, Potalaka)산은 온갖 보배로 꾸며졌고 지극히 청정하며 꽃과 과일이 풍부하게 열리는 술과 맑은 물이 솟아나는 연못이 있다. 관음은 그 가운데 연못 옆 금강보석(金剛寶石)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앉아 중생을 이롭게 하며 선재동자(善財童子)의 방문을 받아 설법을 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무량수경> <아미타경> <관무량수경> 등 정토관련 경전에서는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의 협시로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정토로 인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처럼 관음보살은 중생을 재난에서 구제해주고 궁극적으로는 아미타 극락정토로 인도해주는 보살로 가장 인기 있는 보살이자 친근한 보살로 신앙되었다. 

②일본 치온인 소장 관음32응신도는 1550년 인종의 비인 인성왕후가 인종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며 조성했다.

법화신앙과 화엄신앙과 함께 관음신앙이 성행함에 따라 일찍부터 관음보살을 소재로 한 그림과 조각이 많이 제작됐다. 관음보살도는 다른 어떤 불화보다도 형식이 다양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양유관음도(楊柳觀音圖),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십일면관음도(十一面觀音圖), 관음삼십이응신도(觀音三十二應身圖), 천수천안관음보살도(千手千眼觀音菩薩圖), 준제관음도(准提觀音圖) 등이 있다. 또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물가에 앉아 물속의 달을 쳐다보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도상화한 수월관음도가 특히 유행했다. 관음보살은 물가의 바위에 한쪽 발을 늘어뜨린 반가부좌의 자세로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고, 옆에 있는 바위 위에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있다. 관음보살의 뒤로는 기괴한 절벽과 대나무 등이 있으며 발아래에는 향기로운 연꽃, 산호초 등이 가득하다. 이러한 장면은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는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와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 등에 의하면 중국 당나라의 화가 주방(周昉)이 수월(水月)의 양식을 창안했으며, 원광(圓光)과 대나무가 표현된 수월관자재보살(水月觀自在菩薩)을 그렸다고 전한다. 돈황에서는 당말오대(10세기경) 이후 수월관음도상이 그려졌다. 송, 원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유행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수월관음도가 대거 조성됐다.

현재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로 확인되는 작품은 30여 점에 이른다. 관음보살도의 형상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과는 달리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옆에 그려지고 발아래 선재동자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제난구제상(諸難救濟相)과 같은 도상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어, 이미 독자적인 양식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1310년작 수월관음도는 세로 419cm, 가로 254.2cm의 거대한 화폭에 그려져 있다. 충렬왕과 충선왕의 총비였던 숙비 김씨(淑妃 金氏)가 발원하였으며,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관음보살은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속이 훤히 비치는 비단 베일을 쓰고 붉은색 치마를 입고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앉아있는데, 풍만한 얼굴과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는 그윽한 눈길 등에서 자비로운 보살의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에 보이는 뛰어난 필치와 색채감 및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문양의 표현 등은 이 불화가 뛰어난 솜씨를 가진 궁정화원에 의해 그려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1323년 서구방(徐九方)작 수월관음도, 일본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소장 수월관음도, 일본 다이토쿠지(大德寺)소장 수월관음도, 일본 센오쿠하코칸(泉屋博古館)소장 수월관음도 등 30여 폭의 수월관음도가 남아있다.

수월관음도는 조선시대에도 계속 조성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탱화로 조성된 예는 많지 않고 대개 대웅전 등 전각의 후불벽 뒷면에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고려시대와는 달리 정면관이 대부분이며, 관음보살의 투명한 사라가 백의(白衣)로 바뀐 점도 특징이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550년 왕위에 올라 불과 8개월 만에 요절한 12대 인종의 비 공의왕대비(恭懿王大妃, 仁聖王后)가 인종의 명복을 빌며 제작한 관음32응신도를 꼽을 수 있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관음33신을 소재로 하여 그린 이 그림은 대부분이 산수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바위 위에 편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관음보살 주변으로 다양하게 변신한 관음보살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각 응신처마다 금니(金泥)로 내용을 적어놓았다. 일반 불화에서는 볼 수 없는 산수화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마치 일반회화를 보는 듯하다. 이것은 화면 아래 부분에 적힌 화기에서 보듯이, 도화서(圖畵署, 왕실화원) 화원인 이자실(李自實)이 그림을 그림으로 당시 유행한 산수화풍을 그대로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③당말오대 돈황서 그려진 관음보살도로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외에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에 걸쳐 유행한 관음보살도의 형식 중 하나로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함께 그린 관음지장보살 병립도가 있다.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한 폭 혹은 두 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지장보살영험기(地藏菩薩靈驗記)> 중 장승요(張僧瑤)가 그린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에서 방광(放光)을 하는 상서로움이 일어났으며 이러한 신기한 일이 있을 때면 나라가 태평하였으며 해산달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못 낳는 부인이 상호가 단정한 아들을 낳았다고 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 보살들을 방광보살(放光菩薩)이라 했다는 영험담을 근거로 그려졌다. 아마도 중국에서는 순산(順産)을 원하는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관음지장신앙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관음지장보살 병립도는 고려에도 전해졌는데, 일본 사이후쿠지(西福寺)소장 관음지장보살도는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고 두 손을 가운데로 모아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과 두 손으로 투명한 보주를 받들고 있는 승형의 지장보살을 함께 그렸다. 고려시대 불화도상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 이름만 불러도 중생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극락정토로 인도해주는 관음보살의 자비는 오늘날과 같이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구원의 손길이자 영원한 안식처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3409호/2018년7월18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