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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 (2018).1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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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절로 우리절] <6> 인천불교회관 연화사불교 ‘험지’ ‘옥토’로 일군 도심 포교당
지난 21일 찾은 인천불교회관 연화사 법당. 매주 한번 평균 40여 명 넘는 인원이 모이는 승만합창단 연습이 한창이다. 합창단은 찬불가를 부르고 때마다 해양경찰청 등에서 음성 공양을 펼치며 부처님 법음을 전한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성말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하1층, 지상 4층 건물 하나를 만난다. 100여 미터 채 못가 교회와 성당이 켜켜이 들어차 있는 골목, 시선을 잠시 땅에서 거둬 하늘로 향하면 옥상에 우뚝 자리한 약사여래불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곳이다.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약사여래불이 시가지를 따뜻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건물 입구, 낡은 현판 하나가 지나가는 사람들 발길을 잡는다. 궁서체로 또박또박 진지하게 써진 글씨, ‘참회와 정진, 전법을 통해 참마음을 바로 세우는 도량, 연화사’다.

인천불교회관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연화사는 인천 시가지 내 자리하고 있는 도심 포교당이다. 신식 건물 탓인지 사람들이 주민센터나 회의공간으로 인식하는 탓에 지난해부터 인천불교회관이 아닌 ‘연화사’로 이름을 바꿨다. 

연화사는 인천지방경찰청 바로 뒤 위치해 있는데 좌우로 MBC 인천지국 방송국과 백화점, 대형 쇼핑센터가 즐비해 있다. 종교별 인구 중에서도 개신교와 가톨릭 비율이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지역답게 건물 사이사이마다 이웃 종교가 운영하는 음식점, 세탁소 등이 가득한 거리 가운데 홀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인천불교회관 연화사가 불교 ‘험지’ 인천에서 지역 대표 사찰로 거듭난 건 주지 일지스님이 2004년 사찰을 개원하면서부터다. 개원 3년 전인 2001년, 조계종은 지금의 인천불교회관 자리를 두고 사찰 건축과 운영을 책임질 스님을 공모했는데 일지스님이 이를 기꺼이 맡았다. 

운문사승가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선방에 들어가 공부하며 살아야지”했다던 스님은 복지를 전공하며 포교로 관심을 넓혔고 도반 스님 인연으로 능인사로 거처를 옮기며 인천과 인연을 맺게 됐다. 스님 말에 따르면 “그렇게 흘러 흘러 부평 마하연포교원에 이어 인천불교회관 주지까지 맡게 됐다”고.

인천불교회관 개원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배움에 목마른 불자들 갈증을 채워주는 일. 부처님법을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거나 인천 지역을 벗어나야만 하는 신도들을 위해 기본교육과정부터 개설했다. 그렇게 모인 첫 해 수강생은 50여 명 남짓. ‘첫 술에 배부르랴’, ‘단 10명이라도 좋으니 꾸준히만 있어라’는 마음으로 기초교리를 비롯해 <반야심경> <금강경> <유마경> 등 경전 공부반을 하나씩 개설해나갔다.

소문난 강사진을 불러 모으고 가가호호 다니며 홍보도 하고, 그 세월이 15년. 지금은 기초교리와 경전 강의를 듣기 위해 다른 지역 불자들이 찾아올 정도다. 올해만 해도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스님, 포교원장 지홍스님, 운문사승가대학장 일진스님 등 각 분야 쟁쟁한 강사진이 참여한다고 하니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웬만한 대형 사찰 부럽지 않은 연화사 신도들이다.

조계종 포교원이 지정한 ‘어린이 청소년 포교중심도량’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사찰에서 아이들 소리가 사라졌다’는 말은 연화사에 있어서만큼은 예외. 매주 열리는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연화사 어린이 청소년 법회 참석 인원은 현재 55명에 달한다. 아이들 활동이 가장 활발했을 때는 80명까지 모였을 정도. 연화사 스님과 종무원들은 ‘찾아가는 포교’를 위해 사찰 행사가 있는 날이면 승합차를 운행해 만수동, 연수동, 논현동 마다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

인천불교회관 연화사 전경.

흥미를 잃지 않도록 체육대회, 합창단, 난타반 등 자체 개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별로 진행하는 ‘꿈다락 토요문화법회’도 그 중 하나. 1박2일 동안 사찰로 여름 캠프를 떠나고, 숨겨진 박물관을 탐방하거나 중국 등 해외 불교를 알아가는 야외 활동은 모두 사찰을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드려는 연화사 숨은 노력이다.

연화사가 포교당으로 인천 지역에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신도들의 자발적 동참이 있었다. 사찰 재정을 신도들과 공유하는 연화사는 매월 정기회의를 열어 사찰 운영 방향을 결정하는데 이를 스스로 인식한 신도들은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사찰 행사에 뛰어든다. 연화사 신도회 산하에 존재하는 단체만 거사회, 관음회, 세심대회, 승만합창단, 풍물단, 산악회, 지장회, 인천불교 봉사단, 불화반 등 10여 개가 넘는다.

매월 둘째주 토요일 진행해오고 있는 108성지순례도 올해 벌써 79회를 맞는데 예년에 비해 참석률이 많이 떨어졌지만 평균 120명 넘는 인원이 꾸준히 동참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인천 지역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반찬 배달을 펼치고 있는 붓다봉사회 등의 자비나눔도 인천 지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불교계 자비 나눔 운동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천불교회관 연화사가 불교 ‘험지’ 인천에서 지역 대표 사찰로 우뚝 서기까지 결코 녹록지 않았을 15년. 일지스님은 험지를 옥토로 바꾼 그 결실이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에 있다고 했다. “매번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불교지만 절박한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는 것이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찾은 지난 21일에도 연화사 승만합창단 음성공양이 회관 밖 골목골목마다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천불교회관 연화사 주지 일지스님.

“포교요? 인연 짓기 달렸죠”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누군가 사찰을 지나다 절 한번 올리고 부처님께 참배 한번 하고 가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부처님이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인식 하나 심어주면 그걸로 제 밥 값하는 거라 생각해요.”

지금의 인천불교회관 연화사를 만든 일지스님은 스스로를 가리켜 ‘본디 포교의 포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포교당 운영에 성공했다고들 하는데 도반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몰라요”라며 쑥스러워 하던 스님은 본래 선원에서 평생 수행정진을 목표로 했다고. 그런 스님이 포교 일선에 뛰어들게 된 건 승가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부터다.

“수행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선방에만 앉아있는 것이 왠지 남을 위해 사는 것 같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고민고민하다 결심했죠.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한, 밖에 나가 보시를 하며 살아봐야겠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죠. 지금도 저를 잘 아는 친한 도반 스님들은 그래요. 절대 포교와 어울릴 것 같지 않다고.”

스님은 어린이 청소년 법회에 필요한 일이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한다. 자발적 참여가 필수인 신도 모임에도 적극적이다. 청소면 청소, 강의면 강의 어느 곳 하나 주지 스님 손길 닿지 않는 곳 없다. “사찰 재정이 충분하지 않아도 어린이 청소년 법회를 위해서는 차량도 운행하고 젊은 지도교사도 모시고 하며 투자를 계속해야 합니다. 법문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절에 오고 싶게 만드는 게 먼저에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아이들이 절에 가고 싶다, 신도들은 우리 절이니 내가 나서서 뭔가 해야겠다 라는 생각들이 들게끔 만들어야 해요. 시대가 금방 바뀌는데 불교가 계속 그걸 따라가지 못하면 안됩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포교란 ‘불교와 인연이 닿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개원한 지 올해 15년째입니다. 다른 종교 기세에 눌려 목탁 소리도 시원히 못 내고, 불사금 모자라 법당 짓는 걱정에 한 숨 자지도 못했던 세월에 비하면 참 좋아졌어요. 그래도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 시민 모두가 연화사 존재를 알 수 있게 끊임없이 인연 짓고 인연 맺는 일에 나설 겁니다.”

인천=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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