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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불상을 찾아서] <17>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여래상일까 조사상일까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불교신문 자료사진

이천 영월암은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는데, 당시는 북악사(北嶽寺)라 불렸다. 고려 말에는 나옹화상도 이곳에 주석했다. 사찰 앞 은행나무는 스님이 짚었던 지팡이가 자란 것이란 얘기도 전해진다. 보물 822호 이천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은 높이 9.6m에 달하는 대불이다. 절 뒤쪽을 돌아가면 둔덕이 보이는데 그곳에 놓인 자연암반에 새겨져 있다. <용주사본말사지>에 따르면 “이 마애석불은 고려 중기 산악(山岳)법사가 새긴 것이라”고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10m 높이의 바위 위에 새겨진 불상은 머리와 손은 저부조로 새겼으며 몸은 선각으로 표현돼 있다. 머리는 소발형태로 민머리며 육계가 없다. 눈은 감은 듯 가로로 길게 트여 있다. 콧볼이 넓고 인중은 짧지만 도드라지게 표현됐으며 입술은 두툼하다.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정도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으로 법의를 입고 있으며 가슴 부근에는 내의를 입은 매듭이 보인다. 법의 주름은 다소 형식적인데 왼쪽 어깨 옷주름이 오른쪽으로 흘러 살짝 올라가는 형태로 ‘J’자 문양이다. 왼쪽 어깨에서 하체까지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법의가 새겨진 가운데, 왼팔에는 법의 끝자락이 물결문양으로 새겨져 있다. 이 마애불은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얼굴과 손을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오른손은 엄지와 약지를 맞댄 채 손바닥이 바깥을 향하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안으로 해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엄지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아미타구품인의 하품하생을 표현한 듯하다.

수인으로 보면 아미타불일 수도 있지만 영월암 마애상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이천 북악사(영월암) 역사와 인물’에서 미륵불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산악스님이 불상을 조각할 당시는 유가학을 대표하는 혜소정현스님이 안성 칠장사에 머물던 시기다. 고 교수는 “칠장사와 봉업사, 이천 북악사와 원주 법천사, 남동으로 중원 미륵사, 남으로는 보은 법주사를 축으로 하는 미륵신앙 벨트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영월암 마애불상이 미륵불이라고 밝혔다. 여래가 아니라 영월암을 대표하는 스님의 조각이란 주장도 나온다. 일단 민머리인데다가 부처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육계가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견편단의 가사를 입고 있는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보통의 여래상이 법의를 입고 있는 것과 달리 왼팔에 가사 끝자락이 명확히 새겨져 있는 것으로 미뤄보아 스님의 복식이라는 것이다. 스님을 조각한 것이 맞다면 고려시대 보기 드문 마애승가상이 틀림 없다. 

[불교신문3399호/2018년6월13일자]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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