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에서 

옛사랑은 가고 없지만 사랑하던 사람의 눈빛, 주고받던 그의 눈길, 부드럽고 따뜻한 말과 입가에 번지던 엷은 미소는 아직 남아있다. 흐릿하게 비추던 가로등 아래에서의 기다림의 시간, 호숫가를 거닐던 여름날, 낙엽이 지던 공원의 가을은 남아있다. 비록 나뭇잎이 떨어져 옛사랑을 덮고, 사랑하던 사람의 이름 또한 잊었지만. 잊혀진 것과 잊히지 않는 것, 망각(忘却)과 미망(未忘)이 있으니 이 시는 그 모두를 기리기 위한 회상의 비망록인 셈이다.  
박인환 시인이 명동의 대폿집 ‘은성’에서 즉흥적으로 창작했다는 이 시는 시인의 조카인 가수 박인희가 불러 대중들의 사랑을 크게 받기도 했다.  

[불교신문3398호/2018년6월9일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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