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2 (2018).6.22 금

사이드바 열기
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기획연재 김정희 교수의 그림 속 불국토
[그림 속 불국토] <10> 일생을 그리다 - 팔상도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생로병사
  •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8.06.04 11:16
  • 댓글 0

 

‘팔상도’ 언제 생겼는지 불명확
8대 성지 관련 설화 결합 추정
중국에선 사찰 벽화로 그려져

조선시대부터 팔상도 전해져
‘석보상절’ ‘월인석보’ 비롯해
‘석씨원류응화사적’ 도상 차용 

▲일본 혼가쿠지 소장 ‘석가탄생도’는 조선시대 전기에 그려졌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문득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태어나셨다. 탄생 후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삼계개고(三界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 즉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며, 욕계, 색계, 무색계 일체삼계가 다 고통스럽지 않은 곳이 없으니 모두를 편안케 해 주리라 하셨다. 바로 삼라만상을 다 이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중생을 편안케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화현하신 것이다. 

사찰에 가면 부처님 일생을 그린 그림이 걸려있다. 바로 팔상도(八相圖)이다.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의 그림(八相)으로 압축 묘사했다 하여 팔상도라 부른다. 열폭, 스무폭으로도 그릴 수 있는데 왜 8폭으로 그렸을까. 

팔상(八相)이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팔상의 기원과 관련하여, 인도에서 일찍부터 석가모니를 기념하며 석가모니와 관련된 여러 지역을 순례하는 전통과 관련 있다고도 한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룸비니(Lumbini), 깨달음을 이룬 보드가야 (Bodh-Gaya), 처음 설법(初轉法輪)을 한 사르나트(Sarnath), 열반에 든 쿠시나가라(Kusinagara) 등 4성지(四聖地)는 석가모니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곳으로서 대표적인 순례지였다. 나중에 4성지에 네 곳이 더 추가되면서 8대성지로 확대되었으며, 각 성지와 관련된 설화들이 결합되면서 팔상의 개념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인도에서는 룸비니동산에 태어나신 탄생(誕生), 마군을 물리치고 도를 이루신 항마성도(降魔成道),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설법하신 초전법륜(初轉法輪), 사위성에서 이교도를 불교에 귀의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기적을 이루신 대신변(大神變),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에서 설법한 뒤 하강하는 종도리천강화從恂利天降下), 라자그리하(왕사성)에서 술 취해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항복시킨 취상조복(醉象調伏), 원숭이가 석가모니의 사발을 찾아서 꿀을 가득 채워 공양했다는 원후봉밀(猿븝奉蜜),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열반(涅槃) 등의 여덟 장면을 묘사한 팔상이 널리 알려졌다. 

인도의 팔상의 개념은 중국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항도솔(降兜率)-입태(入胎)-주태(住胎)-출태(出胎)-출가(出家)-성도(成道)-전법륜(轉法輪)-입멸(入滅), 또는 항도솔-입태-출태-출가-항마-성도-전법륜-열반 등이 팔상으로 확립되었다. 남경 서하사 사리탑 기단부에 조각된 팔상도는 오래된 팔상도 가운데 하나이다. 서하사 사리탑은 8각 7층탑으로 높이는 약 15m인데, 탑의 기단 위 수미대좌의 8면에 팔상이 새겨져 있다. 석가모니의 전생인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오는 장면을 비롯해 룸비니동산의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신 장면, 구룡지에서 아홉 마리 용왕이 아기 싯다르타를 씻어주는 장면, 사대문 밖에 나가 생노병사를 보고 출가를 결심하게 되는 장면, 설산에서 고행하며 수도하는 장면, 설산에서의 6년 고행을 중단하고 니련선하에 내려가 목욕하는 장면, 정각을 방해하는 마군을 항복시키는 장면,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 가부좌하고 앉아 정각을 이루는 장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이다. 각 상마다 한, 두 장면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1459년 편찬한 <월인석보>에 새겨진 도솔래의상.

중국에서는 석가모니의 일생이 사원 벽화로 그려졌다. 금대(1115〜1234) 융흥사(隆興寺)와 암산사(巖山寺), 명대(1368〜1662)의 각원사(覺苑寺) 등에 불전 벽화가 남아있다. 그 중 각원사에는 대웅보전의 동남쪽 벽면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방향으로 서남쪽 벽면까지 14칸의 벽면에 총 205장면에 달하는 석가모니의 일생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덟 장면이 아닌 훨씬 많은 장면들로 이루어진 각원사 벽화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찬한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源流應化事跡)>을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불화 중에 팔상도가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 전기에 이르면 <월인석보>의 팔상 판화를 비롯하여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 소장), ‘유성출가도’(독일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석가팔상도’(일본 곤고부지 소장) 등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팔상도는 <석보상절(釋譜祥節)>에 언급된 팔상, 즉 도솔래의(兜率來儀)-비람강생(毘藍降生)-사문유관(四門遊觀)-유성출가(踰城出家)-설산수도(雪山修道)-수하항마(樹下降魔)-녹원전법(鹿苑轉法)-쌍림열반(雙林涅槃)을 기본으로 해서 조성된 것이 대부분이다. <석보상절>은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고 대중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고자 1449년 불경에서 석가의 일대기에 관계된 내용을 뽑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현재 <석보상절>에 수록되었던 팔상도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수양대군(세조)이 즉위한 후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해 편찬한 <월인석보>(1459년)의 팔상도가 <석보상절>의 팔상도를 바탕한 것으로, 그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월인석보> 팔상도를 기본으로 하고,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다양한 장면을 채용한 팔상도가 제작되었다. <석씨원류응화사적>은 <본행경> <인과경> <현우경> <열반경> <장엄경> <법구경> <경률이상> <석가보> 등에 기록된 석가모니의 일생을 200여 개의 삽화와 함께 묘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 이후에 판각되어 유포되면서 조선 후기 팔상도의 기본적인 도상을 제공했다. 우리나라에 전하는 판본은 2종으로 불암사 판(1673)과 선운사 판(1648)이 있는데, 불암사 판은 총 4권으로 권 1·2에는 석가의 일대기가, 권3·4에는 전법제자(轉法弟子)의 행적이 실렸으며 각 권에 100화제(畵題)씩 모두 400화제가 수록되었다. 판심(版心)을 중심으로 우측 상단의 모서리에 네 글자로 된 제목을 새기고 우측에 내용, 좌측에 판화를 새겼으며, 그중 석가와 관련되는 것은 석가수적(釋迦垂迹)에서부터 사리균분(舍利均分)까지 모두 189화제에 이른다. 선운사 판은 불암사 판과 달리 상부에 그림, 하부에는 내용을 새겼으며, 도상은 유사하지만 세부 표현은 다르다. 예천 용문사 팔상도(1709년)를 비롯해 송광사 팔상도(1725년), 쌍계사 팔상도(1728년), 통도사 팔상도(1775년), 남양주 흥국사 팔상도(1869년) 등에서도 <석씨원류응화사적>에서 차용한 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팔상도에 표현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상 도솔래의상은 석가모니가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 어머니 마야 부인에게 입태되는 장면이다. 마야 부인이 마야 궁 안에 앉아 호명보살이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꿈을 꾸는 장면과 입태되는 장면, 정반왕궁에서 왕과 왕비가 꾸었던 꿈의 의미를 바라문에게 묻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제2상 비람강생상은 룸비니동산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나는 장면이다. 마야 부인이 무우수 아래에서 나뭇가지를 붙잡고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석가모니를 낳는 장면, 어린 태자가 한 손은 위를, 다른 손은 아래를 가리키며 탄생게를 외치는 장면, 여러 천이 온갖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아홉 마리의 용왕이 탄생불을 씻어주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제3상 사문유관상은 태자가 4문에서 인생을 보고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이다. 동문에서 노인으로 변신한 정거천을 만나 사색하고, 남문에서 병자를 만나 인생무상을 느끼며, 서문에서 시체를 보고 죽음을 절감하고, 북문에서 사문을 만나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제4상 유성출가상은 태자가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야소다라 왕비가 깜박 잠이 들어 흉몽을 꾸는 장면, 사천왕이 말굽을 받쳐 태자가 성안을 넘을 수 있게 돕는 장면, 마부차익이 돌아와 왕비와 태자비에게 태자의 옷을 바치며 보고하니, 왕비와 태자비가 태자의 소재를 묻는 장면 등이 그려진다. 

제5상 설산수도상은 태자가 설산에서 수도하며 스승을 찾는 장면이다. 고행림에 들어 머리칼을 자르고, 사냥꾼으로 변한 정거천인과 옷을 바꿔 입는 장면, 마부 차익이 태자와 하직하는 장면, 대신들이 궁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는 장면, 니련선하에서 목녀가 석가모니에게 우유죽을 공양하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제6상 수하항마상은 석가모니가 보리수아래에서 마구니들에게 항복받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마왕이 세 딸을 보내 석가모니를 유혹하려다 노파가 되어 도망가는 장면, 마왕이 코끼리를 타고 와서 석가를 위협하는 장면, 마왕 무리들이 항복하고, 무량한 부처를 향해 모든 천신·천녀·군중들이 찬탄하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제7상 녹원전법상은 석가모니가 정각을 이룬 뒤 사르나트에 있는 녹야원에서 초전법륜을 설하는 장면이다. 보관을 쓴 석가모니가 어깨 부근에서 양 손을 벌리고 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화엄경>을 설법하는 장면, 수닷타 장자가 제타 태자의 동산에 금을 깔아 기원정사를 건립하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제8상 쌍림열반상은 석가모니가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는 장면이다. 열반 소식을 듣고 온 제자와 대중들이 슬퍼하는 장면, 가섭존자가 뒤늦게 도착하자 석가모니가 금관 밖으로 발을 내미는 장면, 관을 다비하고 사리가 나오자 사리를 나눠 갖는 장면 등이 그려진다. 

부처님도 인간이셨기에 생노병사를 피하지 못하셨다. 모든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팔상도는 ‘태어나서(生) 나이가 들고(老) 병이 들어(病) 죽음(死)’에 이르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일생도라 할 수 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셨던 부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불교신문3397호/2018년6월6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SNS에서도 불교신문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