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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스님의 天鏡] 절에 온 수녀님
  •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 승인 2018.05.3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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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근심하지 않으며 절합니다” “모든 문제는 나 때문에 생긴 것이며 내 스스로 만든 문제임을 바라보며 절합니다” “세상의 숱한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꿈꾸며 절합니다”….

금선사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 기존의 108배는 젊은이들에게 가닿지 못해서 새롭게 문장들을 만들었다. 템플스테이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이 108배 문장들을 읽으며 순수하게 반응한다. 예상을 넘어서는 호응에 놀란 적이 많다. 

며칠 전 일본 수도원에 머무는 필리핀 수녀님이 템플스테이에 오셨다. 그 분과 함께 도량을 돌며 삶의 숙제는 불이문과 해탈문을 지나며 결국에 자기에게 이르는 길이라고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천주교와 불교의 만남은 봄날 초록 잎처럼 싱그러웠다.

수녀님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좋은 얘기로 가르침을 펴지만 정작 자신의 화와 쌓인 감정은 치유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108배 문장을 읽다가 ‘이렇게 가슴 떨리는 글귀를 만나게 되다니’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이를 넘어 종교를 넘어 그의 솔직담백한 고백 앞에서 동병상련을 공감했다. 수녀님에게 맑은 녹차를 대접하고 ‘세상의 숱한 기준과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며 절한다’는 문장이 새겨진 북마크를 선물했다. 우리의 종교 또한 우리를 구속할 수 없음을 자각하며.

때로는 의식이 거추장스럽다. 수행자라는 먹물 옷도 종교라는 테두리도 또 하나의 옷이다. 인류라는, 선악이라는, 진리와 진리 아니라는 추상성도 바람에 날려버리고 홀가분하게 갖는 만남은 자유로웠다. 문득 암벽에서 불쑥 걸어 나온 듯한 서산마애불의 자애로운 미소가 떠오른다. 그게 사는 맛이지 하며 씩 웃는 그 미소.

[불교신문3396호/2018년6월2일자] 

선우스님 서울 금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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