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김동원 씨가 지난 16일 '제11회 보리수아래 핀 연꽃들의 노래' 시 낭송회에서 직접 쓴 '부처님 행복합니다'를 낭송하고 있다.

장애인 불자 모임 보리수아래
제11회 시 낭송회 및 콘서트
보리수아래핀연꽃들노래 개최

“부, 처, 님, 부처, 님께서, 오신, 이 계절에, 나, 나의, 작은...”

듣기 힘든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시를 읽어 내려가는 김동원 씨 손 끝에 긴장이 묻어났다. 두꺼운 시력교정용 안경을 매만지며 큰 글씨가 써진 하얀 종이를 눈 바로 앞까지 갖다 대보지만 희미하게 보이긴 마찬가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안경을 자꾸 매만지면서도 자신이 쓴 시를 끝까지 읽어 내려가던 김 씨 모습에 관객들 입에서 격려의 함성이 쏟아졌다.

지난 16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장애인 불자들이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장애인 불자 모임 ‘보리수아래’가 시 낭송회이자 콘서트 ‘제11회 보리수아래 핀 연꽃들의 노래’를 연 것. 시각장애인 김동원 씨를 비롯해 뇌성마비,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김영관, 이순애, 최준, 성인제 씨 등 보리수아래 회원들이 직접 쓴 시를 들고 무대에 섰다.

청주맹인학교에 다니며 바리스타 공부를 하고 있는 김동원 씨는 직접 쓴 시 수십 편 중 ‘부처님, 행복합니다’를 골라 무대에 올랐다. “부처님, 부처님께서 오신 이 계절에 나의 작은 생을 돌아봅니다/ 어두운 눈으로 태어나 봄에는 희미하게나마 만발한 꽃을 볼 수 있으니, 부처님 나는 행복합니다/ 작은 몸으로 자라서 여름에는 푸른 바다를 걸을 수 있으니 부처님 나는 행복합니다/ 어두운 귀로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이 가을에는 삶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 부처님 나는 행복합니다/ (중략) / 치유가 필요한 이 땅에 오신 자비하신 우리의 부처님,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는 생이 행복한 것은 사계절 어느 때나 법신으로 부처님이 우리 곁에 계신 까닭입니다/ 나의 이 행복을 널리 나눠 세상의 연꽃으로 피우겠습니다.”

새내기 시인 김영관 씨의 시 낭송.
조계종 중앙신도회가 주최하고 불교방송과 법보신문이 공동 주관한 신행수기 공모전에서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상’을 수상한 성인제 씨의 시 낭송.

진정성 있는 내용, 더듬 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는 김 씨 모습에 감동한 듯 입을 가리는 관객도 있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김영관 씨는 대중 앞에 처음으로 자신이 쓴 시를 발표하는 새내기 시인. 그런 김 씨를 위해 사회자가 ‘매일 108배를 하는 대단한 분’이라 운을 띄우자 용기를 실어주려는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혹여 지루하지는 않을까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은 난타 공연으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선보였고 국악인 최준, 가수 박경하, 섹소폰니스트 김영진 등은 낭송회 흥을 끌어올리는데 힘을 보탰다. 서울 조계사 사회국장 운문스님은 시 ‘룽따, 바람의 말씀’을 들고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보리수아래에겐 반갑지만은 않았을 봄비 내리던 저녁, 못내 발만 동동 구르던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는 “궂은 날씨에도 공연장을 찾아준 분들에게 거듭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진심어린 인사를 전했다. 

최 대표는 “해마다 보리수아래가 공연을 열어오고 있지만 그 때 그 때 마다 과분한 관심과 사랑에 감동을 받곤 한다”며 “장애인 불자들과 비장애인 불자들이 불교라는 매개를 통해 한 데 어울리고 특히 비장애인 불자들이 이 같은 시간을 통해 재활을 하고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詩)는 사는 일이 흔들리거나, 어둠이 보일 때 켜는 등불이거나, 스스로 만든 죽비”라는 뇌성마비 시인 최 대표에게 1년 중 단 하루, 부처님이 오신 5월 열리는 시 낭송회는 장애인 포교를 위한 작은 걸음이자 손짓이다.

포교원장 지홍스님은 포교부장 가섭스님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응원과 격려를 전했다. 지홍스님은 “보리수아래 불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자하는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굳건히 포교 활동을 해나가는데 있어 장애인 불자들 한 명 한명이 원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를 낭독한 김동원 씨는 한지에 시를 써 포교부장 가섭스님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마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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