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산방 앞마당엔 커다란 자목련 한그루가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꽃봉오리가 마침내 화려한 꽃을 피워 봄을 찬탄하더니, 며칠 전 비바람에 꽃잎이 무참히 떨어져 내렸다. 좀 더 오래 두고 보며 봄을 즐기고 싶었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피는 꽃들만 있는 게 아니다. 지는 꽃도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이나 열매도 그것을 위해 아름답게 몸을 내던진 꽃송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줄기에 비해 유난히 꽃이 많이 피는 석류나무는, 피어나는 꽃들을 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가지가 약하다. 그래서 더 크고 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자신들을 내던진다. 고귀한 자비심이라고나 할까. 

오후에 신도 한 분이 오셨다. 차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얼마 전 회사로부터 명예퇴직 권고를 받았다고 했다. 정년을 얼마 앞두고 차분하게 노후를 설계하던 분에게는 갑자기 닥친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기는 나은 경우라며 젊은 친구들을 더 걱정했다. 지금 여기저기서 구조조정과 감원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물론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경영진의 안목과, 서로의 주장만 앞세운 내부적 갈등이 더 큰 원인일수도 있다. 결국 서로 눈앞의 이익에만 현혹되어 전체를 살피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만일 석류나무가 화려하게 핀 꽃들만 좋아해서 그 숫자만큼의 열매들을 다 달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태풍에 가지가 부러지고 뿌리까지 뽑힐 일은 뻔하다. 석류나무는 본능적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잡을 줄 아는 것이다. 꽃과 나무들이 선지식이다. 봄이 아프다. 이번에야 말로 떨어져 내린 꽃들의 아픔을 깊이 새겨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는 꽃도 꽃이다.

[불교신문3388호/2018년4월28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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