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월정사 본·말사 스님들과 함께 일본 교토 사찰순례를 다녀왔다. 월정사는 주기적으로 성지순례를 간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평소 잘 만나기 힘든 스님들이 이런 기회에 교류도 하고, 또한 견문을 넓히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첫 방문지는 천태종 총본산 히에이산 엔라쿠지(比叡山 延曆寺)였다. 사찰을 참배하고 내려올 땐 케이블카를 탔는데 역 대합실에 멋진 글이 하나 걸려 있었다. 연력사 대승정이었던 야마다 에타이(山田惠諦)스님이 99세에 쓴 ‘緣福’, 즉 ‘인연 복’이란 글이었다. 케이블카 이름도 ‘緣福’이라 붙이고 티켓에도 새겨 넣었다. 글을 설명한 끝부분에 ‘사람들에게 좋은 인연이 이어지도록, 그리고 행복으로 인도하는 차량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써놓았다. ‘緣福’이란 차를 탄 것만으로도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떤 인연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 여행 중 우연히 기차의 옆자리에 앉게 되어 대화를 나누다가 부부의 연을 맺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었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인연 복을 만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좋은 일과 좋은 사람만 만나려고 기다릴 수도 없다. 설사 나쁜 인연을 만난다고 해서 투덜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모든 것은, 결국은 내가 지은 나의 인연 복을 그대로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복 중에 인연 복이 제일이요, 오복의 뿌리는 인연 복이니 부지런히 인연 복을 지으라’고 하셨다. 수행자에게 스승과 도반의 인연이 잘 주어진다면 공부를 다 이룬 것과 마찬가지다. 그만큼 인연복은 중요한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인연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가까운 인연일수록 무심히 대하기 쉽고, 공경심을 놓게 되면 쉽게 상처를 주게 된다. 결국 악연이 되는 것이다. 그대, 복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인연들에게 먼저 복을 지어라. 그것이 씨앗이 되어 자연히 복 있는 인연들이 이어질 것이다. 

[불교신문3384호/2018년4월14일자] 

동은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