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숲길 걸으며 여덟 국사 법향 가슴에 새기고…

백련결사ㆍ참회기도 본산서
요세 선사처럼 참회수행하고
사자 같은 용맹심도 다지며 
난향 가득한 보시행 이어가

53기도도량 제25차 순례법회는 지난 3월9일, 10일 양일간 춘란과 하얀 매화가 앞 다투어 피어나는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여법하게 봉행했다.

‘53기도도량’ 제25차 순례법회가 지난 3월9일, 10일 양일간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 백련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됐다. 봄이 오는 길목 ‘53기도도량 순례기도회’ 회원들은 만덕산 백련사로 향했다. 이른 새벽 봄을 시샘하듯 꽃샘바람이 쌀쌀했지만 백련사 입구에 도착하자 햇살은 포근했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길을 올랐다. 산보 나온 강아지가 몸을 쭉 펴고 기지개를 한다. 봄은 왔긴 왔는가 보다.

백련사 입구에 도착하자 주지 일담스님 이하 대중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입가에는 봄을 머금고 있었다. 회원들도 합장하며 환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백련사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보낸 다산초당이다. 그는 이곳에서 한양을 그리워하며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강진읍에서 내려오면 백련사 입구가 있고 그 길을 지나면 다산초당이 있다. 당시 백련사에 주석했던 혜장선사와 정약용은 만덕산의 오솔길을 오고가면서 겨울에는 동백을 보았을 것이고 봄에는 난과 매화를 가슴에 담으며 지난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만덕산은 낮고 부드러운 여인의 가슴처럼 완만하다. 곳곳마다 이름 모를 풀꽃과 아름드리 소나무와 도토리나무들이 울창하다. 이곳에서 강진벌판을 바라보면 애잔한 마음이 일어난다. 아마 정약용은 다산초당에서 먼 강진벌판을 바라보면서 유배의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다산초당을 거쳐 산길을 들어서면 백련사가 보이고 그 옆으로 싱그러운 대밭이 펼쳐져 있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1년(839) 선종 구산선문 가운데 충청남도 보령의 성주산문을 개창한 무염(無染)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당시에는 만덕사로 불리어졌다. 고려후기 무신정권 때 요세(了世)가 중창, 천태종의 수행결사인 백련사(白蓮社)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거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계산 송광사의 정혜결사와 더불어 백련사는 고려후기 불교 수행결사의 양 갈래를 이루는 곳이다. 요세는 이곳에서 치열한 수행을 통해 큰 덕망을 쌓았는데 그는 평생 동안 참회수행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의 별명이 서참회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후 지눌과 함께 정혜결사에서 조계선을 닦았다.

또한 요세는 백련사에서 죄를 멸하는 ‘참회멸죄(懺悔滅罪)’와 정토에 태어날 것을 바라는 정토구생(淨土救生)에 전념하며 염불선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83세에 입적한 후 고려국사로 책봉되었고 시호는 원묘(圓妙), 탑명을 중진(中眞)이라 했으며 이후 120여 년 동안 이 절은 백련결사의 중심으로 번창하면서 8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우리 회원들은 백련사 마당을 기도처로 잡고 대웅전 앞에서 육법공양, 천수경과 사경, 안심법문, 나를 찾는 108참회기도를 여법하게 봉행하고 난 뒤 요세 선사처럼 108참회기도에 들어갔다. 포근한 햇빛이 몸을 스친다. 

그리고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삼월입니다. 지금 남도의 산자락에는 아름다운 풀꽃들이 대지를 향해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백련사는 강진 벌판을 끼고 있는 정말로 아름다운 천년고찰입니다. 특히 만덕산은 춘란과 매화, 겨울동백이 아름다운데 한 번 둘러보세요. 53기도도량 순례가 아니고서는 이 먼 곳에 오기도 힘든 곳입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나면 꼭 한 번 다산초당을 둘러보세요.

오늘 여러분들은 참회수행의 본산이며 구산선문의 하나인 백련사에 순례를 왔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의 25번째 선지식인 ‘사자빈신비구니’를 친견하러 왔습니다. 사자빈신비구니는 어떤 선지식입니까. 사자빈신이란 부처님이 선정에 드신 것을 사자의 기운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써 사자처럼 용맹하게 수행하고 있는 비구니를 뜻합니다. 그러고 보면 요세가 이곳에서 참회수행을 용맹하게 결사하셨으니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백련사의 기운을 받아서 지금 이 자리에서 지난 날 내가 참회할 것들을 모두 참회하시고 부처님의 사자 같은 기운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선묵혜자스님의 법문이 끝난 뒤에 주지 일담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53기도도량 순례회 선묵혜자스님 및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백련사는 봄이면 기슭마다 춘란과 하얀 매화가 앞 다투어 피고, 여름이면 백일홍이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무엇보다 눈 오는 겨울, 찬바람에도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붉은 동백이 일품입니다. 백련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동백숲길은 전국에서 손꼽힙니다. 특히 혜장스님과 정약용은 이 동백숲길을 걸으면서 사상을 교류하셨다고 합니다. 

오늘 회원 여러분들도 법회와 기도를 마치고 동백숲길을 걸으며 남도의 봄 내음과 정취를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차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백련결사 당시, 차는 스님들이 애호했던 수행의 방편이었지요. 그러다가 조선후기 차 문화의 부흥에서 백련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이 있고, 사찰 뒤편에는 수백 년 전부터 자생해 온 야생차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강진만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8국사의 법향과 차향을 가슴속에 담아가는 순례길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회원들은 만덕산 백련사 순례를 봉행한 뒤 기와불사와 직거래장터, 국군장병 초코파이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108약사여래 보시금 수여행사도 가졌다. 

회주 선묵스님(왼쪽)과 백련사 주지 일담스님을 중심으로 진행한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평화의 불’ 분등 기념비 제막식.

‘53기도도량순례’ 핵심은 무주상보시 실천  

부처님을 향한 강한 신심 
회원들과 대화에서 느껴져 

53기도도량 순례도 꼭 24회 차가 되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는 걸 실감한다. 부처님은 일찍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므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마음의 행복을 찾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을 의미 있게 보내라’는 위없는 말씀일 것이다. ‘53기도도량’ 순례의 가장 큰 의미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처럼 53선지식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이다. 덤으로 보시와 선행을 실천하여 잃어버린 내 마음을 찾는 데 있다. 그러고 보면 이만한 의미의 불사(佛事)도 없는 것 같다. 

부처님은 중생을 가엾게 여겨 불법을 스스로 찾도록 세상만물에 진리의 자취를 남겨 두셨으나 미련한 중생들은 찾는 방법을 모르고 찾을 수조차 없었으며 신심마저도 혹세무민(惑世誣民)에 시달려 어지러웠다. 하지만 뜻있는 선지식들은 진리의 불씨를 찾는 그 마음을 손에서 결코 놓지 않았다. 

가끔 산승(山僧)은 “왜 내가 힘든 순례를 지금까지 이어왔을까? 왜 나는 이 길을 걸어왔을까?”하고 반문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은사이신 청담 대종사를 떠올린다. 큰스님은 평생 무지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역경·도제육성·포교 이 세 가지의 서원을 세우셨다. 내가 ‘108산사순례기도회’와 ‘53기도도량 순례’를 결성한 것도 바로 큰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53기도도량 순례의 핵심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실천에 있다. 회원들이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군 장병사랑·농촌사랑·효행상·다문화 가정 108인연 맺기’ 등은 자발적으로 하는 ‘무주상보시’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순례는 불자들에게 진정한 보시가 무엇이며 그 선행의 실천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산승은 회원들과 순례를 다니면서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가피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 마다 진실로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이 같은 일이 비록 하나의 상(相)에 머물지라도 그들이 몸소 체험하고 스스로 기쁨을 느끼고 있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가피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지극한 신심(信心)의 발로이다. 단언컨대, 부처님을 향한 강한 신심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회원들과의 대화 중에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순례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지은 업장을 지우고 세파에 시달려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아나서는 길’이다. 우리의 생은 백년도 살지 못할 정도로 유한(有限)하다. 그러나 부처님의 사상은 무한(無限)하다. 산사를 찾다보면, 우리는 고고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이끼 앉은 탑신(塔身)으로 혹은 아름다운 단청(丹靑)을 머금고 있는 웅장한 전각(殿閣)들을 만난다. 불타(佛陀)의 정신은 2500년이 흐른 지금에도 한국의 산자락 깊숙이 남아 흐르고 있다. 

선묵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ㆍ군종교구장 

[불교신문3382호/2018년4월7일자] 

 

 

 

선묵 혜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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