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할 수 없을 때까지 불음 전하겠다”

 

방송인 김용림 씨는 지난 2월23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53선지식 구법여행의 초청명사로 나서 “부처님 말씀을 접하다보면 뭐 하나 가슴을 울리지 않는게 없다”며 “방송을 더이상 할 수 없는 날까지 부처님 말씀을 전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참된 불자로서의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마음 정화하려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불자들도 저마다 집에
부처님 모시고
매일 기도하며 살길...

조계사 대웅전에서 불자님들을 직접 뵈니까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반야심경을 외고는 있지만 여러분처럼 우리말 반야심경을 외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설 기회를 준 것은 56년의 방송생활을 한 김용림이라는 사람의 신행생활을 진솔하게 듣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일흔아홉살이 됐다. 왜 그렇게 안늙느냐고 많이 묻는데, 그것은 아마도 서른 살 무렵부터 할머니 배역을 해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이 세종대왕 역할을 할 때 저는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 역할을 했다. 50년을 할머니 역할을 했으니 사람들에게는 늘 똑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불교와의 인연이 참 오래됐다. 연애할 때 등산하다가 절에도 자주 가게 되고, 집안이 불교였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익숙해서 편하게 절에 다니게 됐다. 학교 다닐 때는 기독교 학교를 다녀서 교회도 다녀봤다. 다들 그렇듯 종교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모른채 남학생을 만나러 갔다. 절에 갈 때는 특별한 시간인 것 같다. 지금 생각에도 어머니가 절에 갈 때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갔던 기억이 있다.

부처님 말씀에 도반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씀이 있는데, 도반과 함께 삼성암에 다녔다. 삼성암은 화계사 뒷산에 있어서 다니는게 참으로 힘들었다. 그곳에서 세민스님(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뵙게 됐다. 결혼 후엔 시어머니가 청량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부처님이지만 시어머니와 다른 절에 다니는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시어머니가 편하게 다니라고 해서 오랫동안 삼성암과 인연을 맺게 됐다. 지금은 세민스님이 있는 수안사를 다니고 있다. 스님 따라 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아직도 세민스님 밑에서 공부하고 있다.

배우로 유명하지 않을 때는 절에 가는 시간이 꽤 많았다. 나름대로 부처님 말씀 공부도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 이루게 해달라고 빌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요즘도 급하면 부처님부터 나온다.

우리 집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불교방송에서 오랫동안 ‘신행 365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공로로 받은 관세음보살님이다. 세민스님에게 부탁을 드려 점안을 했다. 집에 부처님을 모시면 안된다는 분들도 있다. 친구가 여행을 갔다가 예쁜 부처님을 사가지고 왔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다며 고민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세민스님에게 여쭈었더니 “부처님을 집에 모시는 것은 너무나 복받을 일이고, 불자라면 집에 부처님을 모시고 매사를 부처님 대하듯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부처님을 집에 모시니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가 생활불교가 돼야 한다고 하는데 부처님을 집에 모시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일 때문에 제대로 인사를 못하고 나갈 때가 많지만, 집에 아무도 없어도 큰 소리로 “부처님 다녀오겠습니다”, “일이 잘 풀리게 해주세요”,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할게요”하면서 대화를 한다. 자기 전에도 부처님에게 하루를 돌아보며 참회한다. 그러다보면 ‘참된 불자로서의 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끊임없이 마음을 정화하려고 노력하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불자들도 저마다 집에 부처님을 모시고 매일매일 기도를 올리며 살았으면 한다. 부처님이 안계셔도 기도할 수 있지만 부처님 앞에서 하면 훨씬 더 잘 된다고 생각한다.

김용림 씨가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53선지식 구법여행 스물여덟번째 법회에서 불자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저는 부처님 가피를 참 많이 받은 사람이다. 딸이 20살 때 기숙사를 정하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기숙사에서 방을 못준다고 갑자기 전화가 왔다. 딸자식이 언어도 잘 안통하는 나라에 가서 길거리에 쫓겨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당장 뛰어갈 수도 없고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관세음보살님에게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관세음보살님이 구름을 타고 딸아이가 자고 있는 침대 머리맡을 지나가는게 보였다. 분명 꿈인데 꿈 같지가 않았다. 다시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올리는데 전화가 왔다. 기숙사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됐다는 연락이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이 가피를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관세음보살님을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저는 악역을 참 많이 했다. 배우라면 누구나 착하고 예쁜 역할을 하고 싶다. 하지만 하고 싶은 배역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어떨 때는 제안을 받고 고민도 하게 된다. ‘이 배역은 하지 말까?’ 이런 생각을 가졌다가도 마음을 돌이키게 된다. ‘부처님이 나에게 공부하라고 이 배역을 주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한다. 그렇게 하다보니 상도 받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부처님 말씀을 접하다보면 뭐 하나 가슴을 울리지 않는게 없다.

저는 어디에서나 자신 있게 “나는 불자”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항상 나와 함께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부처님은 나와 함께 있어 주시고 오늘 하루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온다’고 기도한다. 급하면 화장실에서도 기도한다. 부처님과 대화하고 감사 인사도 하고 일을 놓고 쉴 나이임에도 ‘신행 365일’을 통해 여러분에게 음성공양이라도 올릴 수 있게 해준 부처님의 가피에 늘 감사드리고 살고 있다. 5분짜리 짧은 시간이지만 ‘신행 365일’의 부처님 말씀은 모두 저에게 하는 말씀 같았다. 방송을 더이상 할 수 없는 날까지 부처님 말씀을 전하겠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생각한다.

그동안 불자님들이 보내준 사랑에 한 가지 갚아야할 일이 있다. 며느리 종교 문제다. 며느리도 배우여서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고민을 많이 해왔고 궁리도 많이 해봤지만 아직까지도 답을 찾지 못했다. 아들 결혼 전에 며느리 종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 걸렸다. 아들의 “저하기 달렸죠”하는 말에 결혼 승낙을 했다. 제사도 같이 지내고 잘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따로 살다보니까 교회가 나간다고 한다. 어느 자리에서 만난 스님이 며느리 절에 나오게 했느냐고 묻는데, 그날 하루종일 괴로웠다. 이 숙제를 꼭 풀 수 있게 더 노력하겠다.

김용림 씨의 강연을 듣고 있는 불자들.

■ 김용림은...

1940년 생인 김용림은 1961년 서울중앙방송(지금의 KBS) 공채 성우 1기로 정식 데뷔한 이래 56년 동안 KBS, MBC, SBS 등 방송연예 분야에서 활동한 중견 연예인이다. 방송계에서도 불자로 잘 알려져 있다. 불교방송이 개국한 1990년부터 경전 말씀을 전하는 코너 ‘신행 365일’을 맡아 진행해오고 있다. 불교방송 진행자 가운데 가장 오랜 경력을 가졌다. 다수의 연기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2006년 불자대상, 1999년 보리방송문화상 진행상 등을 수상하는 등 불교계와도 인연이 깊다. 불교계 장기기증 희망 등록기관 생명나눔실천본부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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