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림이 되다

 

본생경 육도집경 현우경 근거
인과응보 희생정신 보시 등
선업선과 악업악과 교훈 전해

인도 아잔타석굴을 시작으로
실크로드 따라 서역에도 전해
키질 돈황석굴서 찬란히 꽃펴
고려 보협인석탑에도 조각돼 

중국 북주시대(6세기) 감숙성 돈황석굴 428굴에 조성된 마하살타본생도.

인도의 한 왕국에 세 왕자가 있었는데, 그중 막내왕자의 이름은 마하살타였다. 부처님의 전생이었던 마하살타는 어느날 두 형과 말을 타고 원림에 나아가 수렵을 하면서 숲속에서 서로 마음의 우수(憂愁)와 무(無)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숲속을 향하여 나아가던 중 배고파 죽어가는 어미호랑이와 새끼호랑이를 발견하고 마하살타는 사신(捨身)을 결심하고 두 왕자에게 돌아갈 것을 권유하였다. 형들이 돌아가자 다시 돌아와 옷을 벗고 호랑이에게 몸을 던져 먹게 하였으나 기력이 쇠한 호랑이가 마하살타를 먹지 못하자, 왕자는 곧 마른 대나무 가지로 목을 찔러 피를 내고, 절벽에서 떨어져 호랑이 앞에 몸을 던졌다. 마하살타가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 산으로 간 두 형이 호랑이가 있던 곳으로 가보니 이미 마하살타의 몸은 호랑이에게 다 먹히어 유골만 남아있었다. 이에 두 형은 놀라고 슬퍼하며 마하살타의 유골을 수습하여 사리탑을 세우고 예배한 후, 왕성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마하살타의 죽음을 전하였다.

배고픈 호랑이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한 마하살타왕자의 이야기이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이 이야기는 바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本生譚, Jataka)이다. 대신, 장군, 장사꾼, 도둑 등 인간뿐 아니라 말, 개, 코끼리, 여우, 원숭이, 사슴, 심지어는 까마귀 같은 짐승으로도 태어났던 부처님의 전생은 <본생경(本生經)>이라는 경전에 500여 편 이상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선업선과(善業善果), 악업악과(惡業惡果)를 전제로 한 본생담은 그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여 일찍부터 불교문학과 불교미술의 중요한 소재가 되어왔다. 

불교의 창시자이자 신으로까지 추앙받았던 부처님도 실은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 또는 야차 같은 요괴, 식물이나 동물로 태어났었다는 이야기는 윤회를 이야기하고 연기(緣起)를 이야기하는데 더없이 좋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본생담을 소재로 해서 그려진 흥미진진한, 때로는 드라마틱한 그림이 바로 본생도(本生圖)이다. 

경전에 의하면 불교최초의 본격적 사원이었던 사위성 기원정사(祇園精舍)의 처마 밑에 본생도가 그려져 있었다고 하나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기원전 2~3세기경의 아잔타석굴사원에는 조성 당시의 본생도 벽화가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10굴의 좌우 양측랑 상단에는 산 속에서 눈먼 부모를 공양하던 샤마(Syama)선인이 수렵하러 왔던 왕의 화살에 맞아 죽었으나 그 효양의 덕이 하늘과 통하여 본래대로 살아 돌아갔다는 샤마본생, 첫째부인을 질투하여 죽인 코끼리왕의 둘째 왕비가 사냥꾼이 가져간 어금니를 보고 결국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쓰러져서 지옥에 떨어져 버렸다는 육아백상본생(六牙白象本生)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어 이른 시기부터 본생도가 사원벽화의 주요한 주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돈황 275굴에 그려진 시비왕 본생도.

아잔타 석굴에서 현재 확인가능한 본생도의 종류는 약 25종에 달한다. 주로 <본생경>과 <본생만경(Jatakamala)>, <육도집경>, <현우경> 등에 의거하여 그려졌다. 본생도는 17굴에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제1굴, 제2굴에 많이 남아있으며, 굴에 따라서는 큰 벽면에 많은 장면을 배치하여 한 설화를 그린 경우도 있고 한 장면을 한 그림으로 그린 것도 있다.

5세기말~7세기 초에 조영된 아잔타석굴사원에는 석굴 정면회랑이나 사방의 회랑, 불당(佛堂)과 불당 전실의 각 벽면 및 각 부위의 천정, 전실의 기둥에 약 25종에 달하는 본생도가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필선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17굴 좌측 회랑의 비슈반다라(Visvantara)본생도는 보시를 좋아하던 비슈반다라왕자가 나라의 보물인 코끼리를 이웃나라에 주어버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추방되는 장면이 그려진 것으로, 아잔타의 본생도를 대표할 만한 것이다.

인도의 석굴사원 벽화에서 발전된 본생도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西域)의 석굴사원에도 전해져서 다양한 본생벽화를 낳기에 이르렀다. 서역에서는 여러 석굴에서 본생도가 발견되지만 가장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본생도를 남기고 있는 것은 쿠차(Kucha, 龜玆)의 키질(Kizil) 석굴사원이다. 저 유명한 고승 구마라집(344~413)의 고향 쿠차는 실크로드 북로에 위치한 서역의 강국으로 일찍이 불교가 전래되어, 키질, 셈셈, 쿰투라, 키질가하 등 많은 석굴사원이 개착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석굴인 키질석굴에는 약 90여종에 달하는 본생도가 주실의 원통형 천정 가득 그려져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연산(連山)을 배경으로 하는 마름모꼴의 구획 안에 그려져 있는 본생도는 이야기의 가장 특징적인 한 장면, 예를 들어 마하살타본생도의 경우 호랑이가 마하살타의 몸을 먹는 장면, 시비(Sibi)왕 본생도의 경우 저울에 시비왕의 허벅지살과 비둘기를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장면 등 이야기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그려져 있다. 키질석굴의 본생도는 대부분 <현우경>에 수록된 본생담인 시비왕본생, 마하살타본생, 비릉갈리왕본생, 월광왕본생, 선사태자본생 등이 주류를 이룬다. 

쿠차와 함께 실크로드 북로변에 있는 투르판(Turfan)의 베제클릭(Bezeklik)석굴사원에서도 본생도가 제작되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불교적인 전통 하에 마니(Mani)교의 종교적 전통이 결합된 서원화(誓願畵)라는 독특한 본생도 형식이 발전하였다. 

인도와 서역의 본생도는 중국과 서역의 경계이자 실크로드의 길목인 감숙성 명사산의 돈황석굴(敦煌石窟)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 돈황석굴에는 각종의 본생도와 비유설화도, 불전도, 경변상도(經變相圖), 고승설화도(高僧說話圖), 불.보살, 공양인 등을 그린 벽화가 가득 남아있다. 254굴, 275굴, 285굴 등 초기 남북조시대의 석굴에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어 인도, 서역의 영향이 뚜렷하다. 하지만, 아잔타석굴사원이나 키질석굴사원의 본생도에 비하여 수도 적고 다양성도 떨어지며 동일주제가 반복되어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서도 자기희생적인 보살행이 중시된 주제가 집중적으로 묘사되었다. 

시대가 감에 따라 본생도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초기에는 측벽의 눈에 띄는 장소에 위치하여 한 주제를 한 화면에 표현하다가 여러 주제들을 하나의 화면에 모두 묘사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북주(北周)대부터는 위치도 주요 벽면에서 천정 주위의 외각으로 밀려나 주로 천정장식으로 많이 그려졌다. 그러다가 초당(初唐), 성당기에 이르러서는 경변상도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면서 막고굴 전기에 성행을 보인 본생도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비록 수적으로는 적지만 이 시대의 본생도 또한 눈을 보시하는 쾌목왕본생, 신체에 천개의 못을 찔렀다는 비릉갈리본생, 허벅지살을 베어 비둘기의 생명을 구하는 시비왕본생, 게를 듣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바라문본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희생을 주제로 한 본생담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본생도는 불교의 전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그려졌으나 현재는 일본 호류지(法隆寺)소장의 다마무시즈시(玉蟲廚子), 고려시대의 보협인석탑 등에 간단한 내용의 본생도가 전할 뿐이다. 다마무시즈시는 불상을 담는 불감(佛龕)인데, 비단벌레(玉蟲)의 껍질을 박아 장식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다마무시즈시는 크게 궁전부와 수미좌부, 대좌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미좌의 측면 향우측에는 마하살타본생도, 향좌측에는 바라문본생도가 각각 그려져 있다. 

일본 호류지 소장 다마무시즈시에 그려진 바라문본생도.

마하살타본생도에는 왕자가 옷을 벗어서 나뭇가지에 거는 장면과 두 팔을 아래로 내리고 뛰어 내리는 장면, 호랑이와 7마리의 새끼가 떨어져 누워있는 왕자의 몸을 호랑이들이 둘러싸고 먹는 장면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반대편에는 ‘자신의 몸을 보시하여 게를 듣는 바라문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바라문본생도가 있다. 하단에는 괴이한 짐승의 얼굴을 한 나찰이 입을 크게 벌리고 게(偈)를 읊으면서 바라문에게 다가가는 장면,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보시하기로 하고 벽 위에 ‘생멸멸기(生滅滅已) 적정위락(寂滅爲樂)’이라는 게를 쓰는 장면, 산 위에서 뛰어 내리는 바라문, 제석천으로 변한 나찰이 산위에서 뛰어 내리는 바라문을 받기위해 두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두 본생도는 각각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신품(捨身品)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성행품(聖行品)에 의거하여 그려졌다. 공통점은 모두 ‘사신(捨身)’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자기희생을 주제로 했다는 점이다. 보협인석탑 또는 아육왕탑이라고 불리는 석탑은 천안시 북면 대평리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동국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탑신 면석에는 윤곽을 두르고 내부에 비릉갈리본생, 마하살타본생, 수다나태자본생 등 본생담을 면과 선각으로 새겨 넣었다. 고려시대에도 본생도가 널리 알려졌다는 얘기다.

성스러운 불당의 내부를 장엄하는 장식화로서 뿐 아니라 인과응보, 희생정신, 보시 등 초기불교가 지향했던 불교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 신도들에게 보여주던 본생도.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주었던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는 비단 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삶의 지침서가 아닐까.

[불교신문3367호/2018년2월7일자] 

김정희 원광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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