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을 위한 그림’ 이찬재, 안경자 부부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가 손주들과 교감하기 위해 시작한 SNS가 이제는 지구촌 곳곳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부천 자택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올리는 작업을 하는 모습.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녀와 손자들을 위해 손수 그린 그림과 직접 쓴 글이 국경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어 화제다.

1981년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36년 만에 귀국한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나의 손주들을 위한 그림’이란 의미의 이찬재 할아버지 인스타그램 계정(@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을 통해 알려졌다.

2015년부터 손주들에게 전하는 그림과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는데, 1월25일 현재 32만9000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곧 33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인스타그램에 올린 작품은 700여 점에 이른다. 남미의 대국 브라질의 풍광, 손주와의 아름다운 추억,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 등을 담았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정이 듬뿍 들어있다. 눈을 거스르지 않는 색채와 여백의 미를 살린 그림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댓글은 ‘따뜻하다’ ‘감동 받았다’ ‘울컥했다’는 반응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 만큼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찬재 할아버지는 “sns라는 것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인들도 배워서 하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기쁘다”면서 “또한 자녀 세대들이 자신들의 부모님에게도 sns를 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2만9천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인스타그램(@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스타'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 가족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그림과 글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중요한 방편이 되었다. 처음에는 손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데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한편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가족들이 머리를 맛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딸은 한국에, 페이스북에 근무하는 아들은 뉴욕에 머물고 있지만 물리적 거리는 그리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의견을 공유하면서 한편의 작품을 완성한다. 할아버지는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글을 쓰고, 아들은 영어로, 딸은 브라질어로 검토한다. 안경자 할머니는 “서로의 가치관이 부딪치기도 하고, 보완되기도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 아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옛날 생활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1942년생 동갑내기이며 서울대 동문인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4.19, 5.16, 이민 등 격동의 세월을 직접 겪은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안경자 할머니는 “아들이 지금의 일상에서 만나는 소재뿐 아니라 근현대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면서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찬재 할아버지의 인스타그램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동영상을 아들 이지별씨가 제작해 sns에 올리면서 팔로워가 부쩍 늘었다. 처음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은 영국 BBC이다. 우연히 이지별씨의 동영상을 본 BBC가 기자가 보도하면서 국내외 매체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팔로워가 폭발적 증가했다. 2017년 1월에는 브라질 최대 방송이며 세계 4위 규모의 공중파 방송 Rede Globo에 출연했다. 한국에서도 방송과 신문을 통해 소식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있다.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신심이 깊은 불자이다. 안경자 할머니는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후 브라질 이민을 떠나기 전까지 명성여고(지금의 동국대사범대 부속여고)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이찬재 할아버지도 불교와 인연이 깊은 집안이기에 브라질 이민 후에도 신행생활을 이어갔다. 1990년대 브라질을 방문한 혜인스님(은해사 조실, 원적)에게 이찬재 할아버지는 선정(禪定), 안경자 할머니는 보현화(普賢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전국비구니회장을 지낸 광우, 명우스님, 그리고 최정희 불교신문 전 기자와도 인연이 있다. 오랜 기간 무비스님의 <천수경>을 카세트테이프로 들었기에 귀국 후에는 범어사를 참배해 스님을 만나기도 했다.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인스타그램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후 많은 제안들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가족들과 잘 상의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3월말 또는 4월초에 주한국 브라질 대사관 주선으로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영국 출판사인 ‘펭귄’에서 동화책을 펴낼 계획이다.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면서 “자신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지금은 믿고 지켜보며 관찰할 뿐”이라고 말했다.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불교신문3365호/2018년1월31일자] 

부천=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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