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 출현하신 이래 
불자대중이 법륜을 굴려 
삼천년이 가깝도록 
대처육식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근래 부끄러움이 없는 
권속의 무리가 
마음이 오욕에 물들어 
깨달음의 정법을 멸망케 해…” 

‘범계생활 금지’에 관한 
제1차 건백서가 
조선총독부에 접수되자 
정통비구-육식대처 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은엽은 백상규가 이야기한 미진, 금진이 서구과학이 우주의 질서와 물질의 구조를 연구해 발표한 원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표현만 다를 뿐 기원전 선각자들이 깊은 숲속의 도깨비 같은 원리를 이야기해 놓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은엽은 경이로움으로 백상규를 한참 바라보았다. 

“<화엄경>을 읽는다니 참 잘한 일이오. 그런데 우리가 우주를 말할 때 땅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빈 소리를 해, 하늘에 천상세계가 여럿 있음에도 상상조차 못하고, 화엄경을 읽어도 눈으로만 읽고 마음으로는 못 읽어, 그러니 인간세상의 사람과 하늘세계의 사람을 통틀어 이야기한 화엄경 내용을 이해하기 쉽겠소?”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여래의 세계에 똑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래가 뭐죠?”

“아니, 여태 여래도 몰랐소?”

“막연히 석가모니부처로만 알았지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여래는 범어 타타가타(tath gata)를 한문으로 옮겨 적은 것인데, 해석해놓은 것을 보면 머릿속에 쏙 들어오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놓은 것이 드문 것 같아, 그것은 타타가타 속에 여러 뜻이 내포되어 있어서 그렇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게요.”

은엽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상규가 말을 이었다.

“화엄경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얘깁니다만, 여래께서 앗삿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크게 깨달았다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보살님과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 일어난,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을 명명백백히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게 거꾸로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거지. 명명백백한 그 가치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온당하고, 변함없는 실체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겁니다.”

“그게 ‘무상정변지(anuttar-samyak-sam.bodhi)’라는 겁니까?”

“알고 계셨구먼, 그런데 거기에 대해 생각해볼 점이 많소. 여래께서 큰 깨달음을 이루시기는 하셨으나, 2400여 년 전 사람 아닙니까? 당시 사람 사는 모습들이 어떠했겠소. 막말로 이야기하면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다 똥 누고, 맨발로 코끼리 똥과 진창을 마구 밟고 다닌 발을 씻지도 않고 그냥 잠자리에 드니, 방 안에서 구린내와 똥파리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는 생활 아니겠소?”

“2400년 전 일이라면 미개하다기보다 원시생활이었겠네요.”

“자, 그런 사람들에게 화엄경을 이야기하면 알아듣겠소? 그래서 여래께서는 얘, 밥은 방에서 먹고 똥은 숲속 멀리 떨어진 한곳에다 누워라. 그러다보니 해우소라는 것이 생겼고, 우기에 온갖 짐승들의 오줌똥으로 질퍽질퍽한 진창길을 밟고 다닌 발로 방에 들어오면 되겠느냐? 그러니 잠을 자기 전에 반드시 발을 씻고 자거라. 몸도 깨끗이 씻고, 옷도 깨끗이 빨아서 입으라고 하나하나 가르쳐 준 그것이 바탕이 되어 <아함경> 이야기가 된 것 아니겠소.”

“이해가 갑니다.”

“내가 보살님 학식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아까도 얘기했지만, 인간세계 사람과 하늘세계 사람들을 통틀어 하신 말씀이 화엄경인데, 이게 술술 읽혀 내 살이 되고 내 뼈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사실 여래의 말씀은 읽어서 습득하자는 것이 아니고, 여래와 똑같이 그 세계에 참여하자는 것이오. 여래와 똑같은 참여 속으로 들어가려면 시시각각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어렵고 까다로운 사실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이 불가해(不可解)라는 것이오. 이 ‘불가해’는 ‘있다’고 하는 개념을 넘어서고 ‘없다’고 하는 개념도 넘어선,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것으로, 이것을 ‘궁극적 실재’라 부릅니다. 이러한 궁극적 실재에 도달하려면 여래와 똑같은 수행을 해야 됩니다.”

은엽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쳐다보았다.

“이런 것을 알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도 어려운데, 화엄경 한 번 읽는 것으로 되겠소?”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내 생각인데 화엄경은 나중에 읽고, ‘신역대장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부터 읽어보시오. 페이지수도 많지 않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외다.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을 읽다가 화엄경처럼 탁 걸린 데가 나타나, 목이 타듯 마른데 물을 찾아도 없을 때 나를 찾아오시오.”

은엽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백상규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대각교당을 나왔다. 

딩까라 뎅!

은엽은 ‘궁극적 실재’라는 여래의 대열에 참여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조선불교는 전통혼례의 사모관대를 쓰고 도리질을 했다. 수퇘지는 조금 크면 사금파리로 불알을 깐다. 올라탈 것이나 올라타서는 안 될 것이나 올라타지 말고 얌전하게 잘 자라라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래야 살코기에서 수컷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 돼지는 잡아먹기 위해 키운 짐승이라 그리한다 해도 일본으로 유학 간 청년승려들의 불알을 깔 수는 없지 않은가.

일본으로 유학 갔다가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리비도(libido)적 대상부터 찾는다. 수행자라면 의당히 자아에 의해 성적욕구를 통제하면 리비도는 억눌린다. 물론 상황에 따라 도덕성과 성적욕구가 대립하게 되는데, 이때는 계율로 이를 조절하고, 계율로 억제 억압 등 방어기제의 도구로 삼아야 되는데, 일본 냄새만 맡았다하면 서울역에서부터 헐떡수캐가 되어 달아난다. 

여래의 대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본래 원융산림에서 의발만 있으면 천여 개의 사찰과 당우가 그들의 안식처’였다. 그런데 축첩을 하면 사저(私邸)를 따로 가져야 하고, 술과 고기에 흰쌀밥을 먹으니 독신인 비구에 비해 생활비가 네 배, 다섯 배가 필요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지 갈잎은 먹지 않는다. 마누라를 데리고 운우지정을 나눈 것까지는 좋지만, 생활능력이 없는 대처승 떨거지들이 생활비를 조달할 곳이 어딘가. 낙숫물이 떨어진 곳에 또 떨어지듯 큰방에 둘러앉아 바루에 밥을 퍼서 먹고, 바루 씻는 것 밖에 모르는 그들이 사찰 곳간을 부엉이 곳간 들여다보듯 했다.

이러다보니 신도는 줄고 사찰 곳간은 거미줄로 얽혔다. 먹고 살려니 암자 주지라도 해야 푼돈을 만지겠는데, 마누라를 거느린 중은 주지를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천생 배운 것이 염불이라 사주쟁이나 점쟁이 질을 하면서 거짓말로 슬슬 돈이나 뜯어내니, 선불교까지 중들은 모두 절 모르는 중이 되어 사찰 무용론이 나왔다.

이쯤 되면 불교는 망한다. 하나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생명을 유지해 몸뚱이를 보존하려는 욕구이다. 사찰이 대처육식으로 목에 숨 줄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 이르니, 욕구의 본능이 반사적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주지를 해야 숨 줄을 연장하겠는데, 마누라를 거느린 중들이 총독부와 관계가 원활해 우리도 주지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이것이 곧 주지직 싸움의 시발로, 조선 주권을 일본에 넘겨 최상의 ‘빽’을 가진 이완용까지 끌어들이니, 약아빠진 총독부는 그것은 너희들 집안일이니 너희들끼리 해결하라고 도리어 싸움에 불을 붙였다. 이놈의 나라 언론,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비구측도 옳고 대처측도 옳다, 아니 비구측도 그르고 대처측도 그르다고 뺑뺑이를 돌리니, 사찰 주지를 놓고 비구 대처 싸움이 가관으로 번졌다. 

그때 용성이 발을 벗고 나섰다.

우리 깨달은이 세존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이래로 불자대중이 각각 법륜을 굴려 삼천년이 가깝도록 대처육식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근래에 부끄러움이 없는 권속의 무리가 마음이 오욕에 물들어 깨달음의 정법을 멸망케 해, 감히 대처육식의 행위로 청정한 사원을 악마의 소굴로 변화시키고 있다. 참선, 염불, 간경 등을 전폐하니 이는 천상계의 천신이 눈물을 흘리고 삼가 토지의 신령을 분노케 한다….

1926년 5월 ‘계를 범하는 생활(犯戒生活) 금지’에 관한 제1차 건백서를 비구 127명의 명의로 총독부에 보냈다. 건백서가 조선총독부에 접수되자, 정통 비구 계열 승려와 속이 음험하게 일본 물에 젖은 대처육식 승려들 가운데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하나 총독부에서는 강 건너 시아비 뭣 보듯 했다.

상언(祥彦)과 성우(盛祐)는 두어 해 전에 용성스님 계를 받고, 상언은 선학원에서, 성우는 해인사로 내려가 정진에 열중했다. 용성은 그해 9월 제2차 건백서를 다시 총독부에 보냈다. 

수행자는 계율 250계와 십중대계, 마흔여덟 개의 가벼운 계를 받았기 때문에 대처육식을 엄금하는 것이 눈과 서리와 같았다. 계율 지킴이 이렇거늘 여자를 범한 음란한 자가 있으면 영원히 승단 밖으로 축출, 환속케 하시니, 현금 조선승려가 대처육식에 빠져 청정사원을 더럽고 지저분한 악마의 굴로 운영하는 것을 참다운 승려들은 원치 않을 뿐 아니라 읍혈통탄(泣血痛歎)하는 바이다….

[불교신문3354호/2017년12월16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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