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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는 사자후] <27> 구산스님 - 1969년6월1일자 ‘법문’산도 물도 스스로 장엄하니, 누가 주인공인가?
50년 가까이 정진하는 곳마다 가람수호에 힘쓰며 항상 대중과 함께 했던 구산스님.

一物長靈貫古今

六凡四聖同途臨 

家家門路無翁塞 

速速遲遲自在任

모든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에 한 물건이 뚜렷이 밝고 둥글어 몇 천만년이 지나가고 다가오건 또 천지가 무너지고 우주가 다 한다할지라도 항상 일월과 같이 찬란히 빛나나니 육도(六途: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중생과 사성(四聖: 불, 보살, 성문, 연각)이 털끌만치라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누구나 똑같이 원만구족하여 있으며 동시에 출현하고 동일에 열반하니 다 같이 한 길로 왕래함이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불보살은 중생과 같이 생사를 받는 가운데 생사를 받지 않고 중생은 불보살과 추호도 틀림없이 열반묘락을 받건만 그것을 모르고 꿈속에서 사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랴. 모든 사람들의 목전(目前)의 진리로 통하는 문이 환하고 극락이나 천상인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또한 활짝 열렸으니 묻노라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속히 가건 더디 가건 네 마음대로 하되 부디 삼악도의 고통은 면할지어다.  

불교신문 전신인 대한불교 제302호(1969년6월1일자)에 실린 송광사 삼일선원 조실 구산스님 법문 일부.

 

현재 고통을 달게 받는 것도 
무한 자재와 안락의 기약이니
본래 갖고 있는 ‘부처의 지견’

바로 ‘자기의 마음’ 깨달아 
말년 이르러서 후회 없도록 
부지런히 공부하면 ‘성현’…

고인(古人)이 이르되 인연회우시(因緣回遇時)에 과보(果報)를 환자수(還自受)라,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고 했으니 인과를 무시하고 단견(斷見)이나 상견(常見)에 떨어져 차마 삼악도의 고통을 어찌 스스로 부르랴.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중생의 마음에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라”하시고 달마스님께서는 “바로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 성현이 되라”하셨으니 불조의 말씀을 거울삼아 납월삼십일을 당하고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이르러서 후회가 없도록 부지런히 공부할지이다. 

少康返招極辛苦 

勤苦能就菩提道

鵬飛蒼海龍藏跡 

獅吼靑山獸滅踪 

모든 중생들은 육신으로 자기를 삼고 탐·진·치 삼독심으로 본심을 삼아 의·식·주 삼건사(三件事)와 오욕락(五欲樂)의 생활환경에 속아서 귀중한 평생을 헛되이 살다가 허망하게 죽는 것이 인간의 본능으로 아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이같은 생활을 애처롭게 여기고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혁명하여 참다운 삶의 보람과 가치를 깨닫고 무량한 쾌락을 증득케 하시니 인천(人天)의 대도사(大導師)며 대의왕(大醫王)이로다. 인생무상을 비유한 설화와 같이 무상살귀인 코끼리에 쫓겨 달아나다가 밑바닥에서는 삼독의 독사가 혀를 널름 거리고 흰쥐 검은쥐가 번갈아 갉아 먹는 칡넝쿨에 매달려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오욕(五欲)의 꿀물을 받아먹는 것과 같은 일시적인 쾌락을 영원한 안락인 양 착각하고 가지가지 죄업을 짓다가 극신극고(極辛極苦)를 받을 때 가서는 누구를 원망하리오. 제 스스로 지어 받음인지라 이같은 미래를 생각하여 근실하고 여법히 수행하여 본래 구족한 지혜덕상을 성취하면 현재 고통을 달게 받는 것이 뒷날 무한한 자재와 안락을 기약함이 아닌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이르기를 초연히 수도하는 납자가 비록 가난해 보여도 진실로 환상과도 같은 몸이 가난할지언정 덕도의 법열에 충만하며 몸에는 낡은 누더기를 걸쳤지만 값을 정할 수 없는 대도(大道)의 보배를 지녔으니 천만년을 쓴들 줄고 느는 것도 아니요 또 일제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아낌없이 보시한 들 다함이 없는 지라 이러한 성중성(聖中聖)은 긴 하늘가에 사무치어 창해의 용(龍)들도 어리대지 못하고 또한 사자와도 같아 한번 소리치면 야호정령(野號精靈)의 뭇 짐승들은 발자취도 볼 수 없네. 설사 이 같은 위덕이 있다 할지라도 일체상(一切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대심범부(大心凡夫)의 해탈경계요 곧 이 청정본원자성(淸淨本源自性)의 부동지(不動智)로다. 

隨緣涉路自忽忽 

或上精靈又下洞

水頑純潔磨岩白 

山全靑芳花紅

청산의 백운처럼 인연 따라 남으로 북으로 거침없이 오고가며 유연중생(有緣衆生)을 제도하니 이것이 곧 불조(佛祖)의 가풍(家風)이라 어느 때는 준령태산도 넘고 또 어느 때는 천만 길 깊은 골짜기에도 들어가니 이 얼마나 바쁜 시절이며 또 이 얼마나 좋은 시절이랴. 

일체중생이 다 같이 온누리를 뚜렷이 비추는 지혜를 갖추어 있건만 무시겁래로 익힌 습기에 따라 무명분별에 잠겨 전도행(顚倒行)을 마음대로 하니 문수보현(文殊普賢)과 관음대세지(觀音大勢至)가 갓난아기를 사랑하듯 보호도 하고 혹은 금강신장(金剛神將)을 나투어서 위엄을 보여주기도 하며 갖은 방편을 백 천 가지로 쓸 때 차별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바쁘고 고달픔도 무량하지만 산간에 흐르는 물은 청정무구(淸淨無垢)한 본연자성(本然自性)을 나타내려고 바위 돌을 갈면서 희게 흐르고 첩첩청산은 비청비백역비흑(非靑非白亦非黑)으로 간간히 꽃을 수놓아 장엄하였도다. 

候鳥鍊聲忙彩刺 

眞人樂道似雲踪

若問箇中端的意 

隨流得妙萬相空

산도 절로 물도 절로 화장찰해(華藏刹海)를 장엄하였으나 그 가운데 주인공은 누구련고? 철따라 우는 꾀꼬리는 벗을 불러 오르내리니 비단 위에 꽃을 수놓은 듯 아름다운 소리는 무공적소식(無孔笛消息)을 전하여 오네. 그 가운데 무위진인은 향긋한 차로 벗을 삼고 흰 구름이 청산을 지나가듯 성색(聲色)에 걸림 없이 무심히 수용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며 기쁘지 아니하랴.

만일 누가 이 가운데 진소식(眞消息)을 묻는다면 “은쟁반에 흰 눈을 담뿍 담아 주리라”하겠다. 고목에 꽃이 피니 분명히 따뜻한 봄날이요 누른 꾀꼬리 노래하니 또한 신록이 우거질 때 한 마디 일러라 은쟁반에 흰 눈을 담뿍 담아 준다는 뜻이 어떠한고? 

大道虛玄何曾受 

風柯月渚宣妙旨

登山納履步安全 

臨水踏橋行自在 

■ 구산스님은…


1909년 12월17일(음력) 전북 남원군 남원읍 내척리 509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한학을 공부하다, 1923년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가사를 책임졌다. 이 무렵부터 남원 용성보통학교 정문 앞에서 명치(明治)이발관을 운영했다. 부처님 10대 제자로 이발사 출신인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존자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병고가 찾아온 후 생사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한 지인(知人)의 권유로 지리산 영원사에 들어가 100일 기도를 했다. 그 뒤로 불법(佛法)에 귀의해 송광사 삼일암에서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때가 1937년이다. 효봉스님에게 사미계를 받은 이듬해인 1938년 통도사에서 해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출가 후 송광사 삼일암 선원, 백양사 운문사 선원, 통도사 백련암 선원에서 정진했고, 1943년에는 김천 청암사 수도암 정각토굴에서 용맹 정진했다. 1946년 가야총림(현 해인총림) 개설 당시 은사 효봉스님이 방장으로 추대되자 도감 소임을 보았다. 1947년 합천 가야산 법왕대에서 정진 중 깨달음의 경계에 들었다. 1951년 효봉스님에게 전법게를 받고 법맥(法脈)을 이었다.
1953년 통영 미래사를 창건하고 은사 스님을 모시며 불법을 폈다. 정화불사가 발발하자, 500자 혈서(血書)를 써서 당위성을 알렸다. 1955년 초대 전남 종무원장을 거쳐 조계종 중앙감찰원장(1956년, 1967년), 중앙종회의원(1960~1967년), 팔공산 동화사 주지(1962년) 소임을 보면서 정화불사를 완성하고 종단을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헌신했다. 1957년 백운산 상백운암에서 안거를 했다. 1966년에는 세계불교승가대회에서 한국대표로 참석했다.

1969년 5월30일 송광사에 조계총림이 개원되자 초대 방장으로 추대됐으며, 같은 해 불일회(佛日會)를 창립해 총재 겸 총회장을 맡는 등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후 구산스님은 1976년 동국대 이사를 지냈으며,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눈을 돌려 미국 LA 고려사(1979년), 스위스 불승사(1982년)와 미국 카멜 대각사를 창건했다. 1973년에는 조계총림 불일국제선원의 문을 열어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83년 은사 효봉스님의 유훈을 계승해 제2정혜결사운동을 발원하고, 제8차 중창불사를 시작했지만, 같은 해 12월16일 조계총림 삼일암에서 조용히 원적에 들었다. 법납 47년, 세수 75세. 저서로 영문판 법어집 , 법어집 <석사자> <칠바라밀> 등이 있다..

[불교신문3354호/2017년12월16일자] 

정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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