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재산이라도 일정수준 이상은
세상의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비의 마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해야 
소비자도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

나의 할머니는 내게 참으로 무한한 사랑을 주셨다. 원래 손주가 자식보다 더 예쁘다고 했던가? 할머니의 나에 대한 편애는 거의 맹목적이었다. 어머니가 언젠가 사탕을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고 몇 개만 주고 사탕을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셨는데 내가 할머니한테 먹고 싶다고 말하자 할머니가 살짝 몇 개 갖다 주신 적이 있었다. 알고 보면 교육적으로 어머니가 더 옳으셨음에도 할머니는 교육이고 뭐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주셨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화를 내시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안 된다는 말도 없으셨고 단 한 번도 웃지 않으셨던 적이 없으셨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할머니에 얽힌 추억이 생각나서 마음이 좋지 않다. 할머니는 내가 대학 시절 돌아가셨는데 그때 소식을 접하곤 그저 멍했을 뿐이다. 요즘은 가끔 할머니의 추억이 떠오르며 지금 살아계신다면 정말 정성껏 모실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내게 자비로움이 뭔가 느끼게 해준 분이다.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오늘날 시장자본주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약육강식이고 강자에 의해 수탈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만약 불교가 자비의 종교라면 자비로운 시장자본주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비는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의 삶이 힘들면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로워야 한다. 경전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정부의 의무를 자비의 관점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의식주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산, 소비, 분배 등의 행위는 물론이고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 구매자와 판매자의 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등 모든 경제관계가 자비에 기초해야 한다. 범죄행위를 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자비롭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기업이 위기에 처하지 않았는데도 경비절감을 위해 무조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무자비한 것이다. 자비에 기초한 경제관계는 그렇지 않은 경제관계에 비해 훨씬 더 연민과 배려에 기초하여야 한다.

1920년대 영국 귀족과 하인의 삶을 다룬 드라마 ‘다운튼애비’를 보면 귀족이 하인을 무조건 해고하지 않고 안쓰러워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보인다. 이 드라마를 시청한 미국 사람들이 미국 중산층이 영국 하인보다 못하다는 다운튼애비 이코노미를 주장하기도 했다. 경제논리에 의해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은 자비가 없는 기업이지만 해고했을 때 어떻게 먹고 살까 걱정되어 쉽게 해고하지 못하고 근무시간을 단축해 모두 고용하기로 하는 행위 등은 자비로운 기업의 사례이다.

자비보다 더 앞서서 필요한 것은 공정한 시장경제다. 가난한 사람은 시장이 공정하기만 해도 큰 도움을 받는다. 공정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이어야 하며 불교에서는 정법국가를 의미한다. 정법국가란 치우치지 않고 억울한 사람이 없는 시장자본주의와 정부를 말한다. 시장자본주의가 공정해도 한계가 있기에 자비로운 시장자본주의가 필요하다. 자비는 공정의 한계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중소기업인이 “우리에게 뭘 해주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등하게 거래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되요”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는 이미 한국 경제의 가장 고질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기업이 특허를 가진 중소기업에게 독점계약을 체결한 뒤에 대량 주문을 내고 얼마 뒤에 주문량을 뚝 떨어뜨린다. 시설을 대거 확충했던 중소기업은 견디지 못하고 대기업에 백기 투항하며 중소기업의 특허는 대기업에게 넘어간다. 독점계약을 맺었기에 다른 대기업에게 판매할 수도 없다. 이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자비로운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자비로운 관계는 평등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공존하는 시장을 통해 구현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하고 경쟁자들도 승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업이 공존해야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보시는 자비의 경제행위이다. 부자는 세금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과 노력 이상의 재산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지만 세금제도는 대부분 부자에게 관대하기에 한계가 있다. 부자가 자발적으로 세상의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은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 소수의 부자들의 재산을 나누면 전 세계 빈곤층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한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과 유리되어 살기에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의 마음을 가질 기회조차 없다. 부자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도 불자의 몫이다. 일정 수준의 이상의 재산은 자기 것이 아니고 세상의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비의 마음이다.

[불교신문3346호/2017년11월18일자] 

윤성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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