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아들이라고 불러도 되겠는가?”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노부부의 마르고 주름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들이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노부부 집으로의 
식사초대 부탁은 거절했다 

아무리 이 노부부가 
지난 오백생 동안 부처님의 
전생 부모님이었다 해도 
수행자는 탁발 걸식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공양 기회를 주는 것이 
교단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보디 왕자가 아름다운 연꽃 모양의 궁전을 세운 숭수마라기리는 박가족의 수도였다. 박가족은 왓지연맹의 일원으로 연맹을 대표하는 가장 강성한 종족은 릿차위족이었다. 이들의 수도 바이살리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에도 한동안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부처님 당시 인도는 나라 간의 정복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고 박가족은 릿차위족만큼 강성하지도, 운이 좋지도 못했다. 부처님께서 숭수마라기리를 방문하셨을 때, 이곳은 이미 우데나왕이 다스리는 왐사 왕국에 병합된 후였다. 숭수마라기리를 정복한 우데나왕은 자신의 아들 보디 왕자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보디 왕자는 사실상 숭수마라기리의 군주이자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보디 왕자를 비롯하여 매우 중요한 인연을 만났다. 

지나온 오백생 부모님의 한마디

부처님께는 여러 명의 부모님이 있었다. 부처님을 낳아주신 부모님은 카필라 왕국의 숫도다나 대왕과 마야 왕비였다. 마야 왕비는 부처님이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숫도다나 대왕은 곧바로 새로운 왕비를 맞았다. 왕비의 조건은 단 하나, 태어난 왕자를 잘 키워줄 수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마야 왕비의 친동생이자 부처님의 이모였던 마하파자파티가 부처님의 새 어머니가 되었다. 출가 전 왕자 싯달타의 부모님은 이렇게 세 분이셨다. 

출가 후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은 새 아버지와 새 어머니를 만났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숭수마라기리 부근의 베라깔라 숲에서 머물고 계실 때였다. 어느 날 아침에 걸식을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성안으로 들어섰을 때,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길을 걷던 노부부가 부처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오, 나의 아들아!”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부부는 이미 일흔이 넘은지 오래였다. 하지만 부처님을 뵙자마자 이들은 마치 젊은 청년처럼 빠르게 달려왔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 노부부를 막아서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가만히 제자들을 밀쳐냈다. 부처님 앞에 선 노부부의 눈에서는 반가움과 그리움의 눈물이 흘렀다. 아내는 부처님의 두 손을 연신 쓰다듬었고, 남편은 부처님을 껴안고 눈물로 흠뻑 젖은 뺨을 맞대며 말했다. 

“아들아, 집으로 가자꾸나.”

부처님께서는 침묵과 미소로 노부부의 초대를 승낙하셨다. 이에 아내는 기뻐하며 스님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도 같이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오늘 식사는 우리 부부가 대접하겠습니다.”

부처님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내내 노부부의 주름진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 아내는 부처님의 손을 꼭 잡고 길을 안내하였고, 남편은 부처님의 손에서 발우를 빼앗아 들었다. 부처님께서 노부부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된 아난존자가 속삭이듯 여쭤보았다. 아난존자의 질문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스님들의 속마음을 대신한 것이었다.

“부처님, 이 노부부는 부처님을 뵙자마자 ‘나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어떤 인연 때문입니까?”

제자들이 노부부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셨다.

“아난아, 저 노부부는 과거 오백생 동안 나의 부모님이었노라.”

다람쥐처럼 귀엽고 사랑스런 아들

“우리 아들이 집에 왔다. 어서 자리를 펴라.”

부처님은 손을 잡고 집으로 간 부부는 대문을 열면서 하인들에게 힘차게 소리쳤다. 오랜만에 손님을 맞은 하인들은 서둘러 마당에 빗질을 하고 먼지가 나지 않도록 물을 뿌린 뒤 자리를 깔았다. 그 사이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손수 갖가지 음식을 준비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앉아계신 동안 노부부는 음식을 날랐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시작하자 노부부는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시중을 들었다. 아내는 부처님의 발우에 연신 맛있는 반찬을 놓아드렸고, 남편은 부처님의 다리를 주무르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댄 채 엎드려 울기도 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고 손을 씻은 뒤 편히 앉으시자 남편이 불거진 눈시울을 한 채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을 하고 바로 아들을 얻었다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바라보고만 있어도 흐뭇하여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지. 그 조그만 아이가 어찌나 몸놀림이 잽싸고 영리한지 ‘나꿀라(날다람쥐)’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지.”

남편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내는 아득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날, 크게 잔치를 열었지. 그날부터 우리도 나꿀라삐따(나꿀라의 아버지), 나꿀라마다(나꿀라의 어머니)로 불렸다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의 이름이 담긴 그 이름이 얼마나 좋았는지 원래 내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졌다오. 하지만 시간은 어찌나 빠르고 야속하던지. 언제까지나 우리 품안에 있을 것 같았던 아들은 결혼해서 멀리 살고 있고, 딸들도 다들 멀리 시집을 가서 자식들의 소식을 들은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

말을 마친 남편의 눈가의 주름에는 깊은 외로움이 새겨져 있었다. 그때까지도 부처님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내가 울먹거리며 물었다. 

“그대가 얼마나 우리 아들을 닮았는지, 우리는 그대가 정말 나꿀라인 줄 알았다오. 그대를 아들이라고 불러도 되겠는가?”

부처님은 미소를 지으며 노부부의 마르고 주름진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예, 그렇게 부르셔도 좋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노부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대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 숭수마라기라에서 지내고 있다면 부디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하게나.”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노부부의 이 부탁은 거절하였다. 아무리 이 노부부가 지난 오백생 동안 부처님의 전생 부모님이었다 하여도 수행자는 탁발 걸식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공양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 교단의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60년을 함께한 금슬 좋은 부부

부처님께서 날마다 공양을 하는 것은 거절하셨으나 노부부는 실망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날 이후 부처님과 제자들이 있는 베라깔라 숲을 매일 같이 찾아왔다. 베라깔라 숲은 사냥이 금지된 곳으로 모든 야생동물이 보호를 받고 있었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다니기에는 위험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노부부의 집은 성 안에 있었고 숲은 성 밖에 있었기 때문에 걸어서 오고 가기에 결코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부처님을 뵈러 왔고 좋은 음식이 생기면 가장 먼저 부처님께 올렸다. 

“오늘은 과일이 달콤하니 맛이 좋아서 조금 가져왔다오.”

“오는 길에 과자가 맛있어 보여서 가지고 왔지.”

“어제는 날이 제법 서늘하였는데 혹시 한기가 들지는 않았나 싶어 따뜻한 죽을 좀 가져왔는데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노부부가 부처님을 찾아오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일 때도 있었고, 한낮일 때도 있었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늦은 오후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부처님은 물론 그 어떤 스님도 불평하지 않았다.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노부부의 걸음걸이는 느리고 고요했으며, 목소리는 온화하여 수행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나 함께인 다정하고 자비로운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님들은 따뜻하고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부부의 방문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고 스님들은 두 사람을 볼 때면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젊고 아름다운 선남선녀는 아니었으나 백발의 두 사람은 하늘도 부러워할 만큼 서로를 향한 정이 깊었다. 어느 날 베라깔라 숲을 찾은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부처님께 말했다.

“부처님, 저희 두 사람은 결혼하고 지금까지 60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부부가 되었으니 거의 평생을 함께 지내온 것이나 다름없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서로를 속이지 않았고, 서로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상대방에게 죄를 짓거나 잘못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행복했지요. 우리 두 사람의 남은 소원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죽는 날까지도 함께하는 것입니다. 아니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 지금처럼 함께 하는 것이 소원이랍니다.”

[불교신문3345호/2017년11월15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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