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범능스님의 추모음악회에 다녀오자는 권유를 받고는 가을의 정취를 물씬 맞고 오겠다는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천불전 앞에 도착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뭔가 모를 가볍지 않은 느낌이 밀려들었다. 전남 화순군 춘양면 천태산 중턱에 자리한 개천사를 올라가는 길은 물매화, 개쑥부쟁이, 해국, 자주쓴풀, 솔채 등 수 많은 풀들이 지천이었고 비자나무 숲에 쌓인 채 고즈넉한 경치를 자아내며 풀벌레 울음소리 들썩거렸다. 

추모음악회 행사는 이미 조용히 진행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용으로 하는 주옥같은 시에 동서양의 악기를 활용해 많은 명상음악을 작곡했다는 범능스님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음성이 잔잔하게 들려왔다. 찬불음반 앨범 출시를 앞두고 뇌졸중 쓰러져 먼 길을 떠나셨다고 한다. 범능스님이 작곡한 ‘딩동댕’이 사찰에 울려 퍼졌을 때는 물봉선 옆으로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 함께 나와 춤을 추었다. “내 무덤은 만들지 마라”라고 하셨던 스님의 뜻과 자비가 물화(物化)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음악을 듣는 내내 소아암 돕기, 외국인노동자 쉼터 등 고통 받는 중생들에게 가까이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온 맑은 수행자의 모습을 뵌 듯해 절로 가슴이 숙연해졌다. 가을의 만월(滿月)은 온전히 맑아 덩달아 불자들의 어깨를 매만지고 원만한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다. 

“산 같은 죄 흔적 없네 탐진치라 연꽃으로 피어지이다 나없어라.” 마지막 유작의 노래와 가사가 세상사에 집어넣을 묵화(墨畵) 한 점 인양 물인 듯 산인 듯 무심인 듯 해탈인 듯 길을 만들고 있는듯했다. 집에 돌아와서 유튜브를 통해 명상음악을 차분히 전 곡을 다시 들어봤다.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음악을 통한 깨달음은 찰나가 아닌 영원이 아닐까란 깊은 생각으로 개천사, 범능스님. 명상음악과 만월이 어우러진 그날 밤은 나를 아직도 흔들리는 꽃으로 피워 내며 묵화 속에서는 음악으로 떠돌며 번질 위로와 고요가 담담히 흑백의 색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345호/2017년11월15일자] 

김성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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