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조개는 달을 머금습니다.”
얼씨구, 용성은 
하동규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은엽을 보았다.

“보살은 장수에 계신 
부모님에게서 낳기 전에 
무엇이었소?”

“그야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아버지의 정은 뼈로, 
어머니의 난세포가 
피와 살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이건 의학적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소.” 

술, 담배, 여자의 연결고리는 현찰이다. 현찰이 있어야 지옥문도 연다. ‘탐심을 내지 말라.’ 귀가 멍멍하게 옹이가 박힌 출가수행자들이 시줏돈이 공짠 줄 알고 잡기에 손을 댄다. 뭉칫돈을 잃고도 눈 하나 까딱 안 하니, 배짱이 고무줄인 줄 모르고 여자들이 떡고물 줍겠다고 줄줄 ‘나래비’를 선다. 사기꾼은 그 틈에서 생긴다. 대각교라고 그런 일 없으라는 법이 없다.

사찰령으로 사찰 인사권을 틀어쥔 조선총독은 조선불교를 가지고 놀았다. ‘생활불교’라나 뭐라나 거기에 빌붙은 본산 주지들이 사찰재산 처분과 관리권을 손에 쥐니 현찰이 펄펄 넘쳐났다. 이런 판국에 서산대사(淸虛休靜), 편양언기, 풍담의심, 월담설제, 환성지안의 선맥을 이은 용성이 3ㆍ1만세 주동자로 감방에 들어간 현실이라 영감님 돈은 내 돈이고 아들놈 돈은 사돈네 돈이란 듯 사기꾼 농간에 휘말렸다. 이런 것을 ‘고자리 먹은 호박 꼴’이라 한다. 동규가 늘어놓는 이야기 너머에 척하면 착하듯 대각교당이 팔릴지 모른다는, 식전 마수에 까마귀 우는 소리처럼 불길한 암시가 전해져 왔다. 

식민지 정책 목적은 착취에 있다. 실제 존재 사실로 실행된 식민지의 법률과 권력을 은엽은 막아낼 힘이 없었다. 그래서 화제를 돌렸다.

“용성대사님 건강은 어떠합디까?”

그 말이 나오기 바빴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뵙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스님 건강상태를 체크해 주십사 부탁드리려고요.”

“질병이 위급한 상태가 아니면 외부 의사의 진료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러니 방법을 찾아보려고 교수님을 만나 뵈려 했습니다.”

말하자면 은엽의 배경(back)을 빌리자는 소리였다.

“수용시설 의무 담당자와 책임자 협조를 얻어야 되오.”

“그럼 어렵겠군요.”

“일단 검진 신청을 내세요. 다음 일은 내가 알아 볼 테니.”

그러고 대각교를 나왔다.

시가 기요시(志賀潔)는 조선총독부 의원장과 경성의전 교장을 거쳐 지금은 의학부장으로 있다. 식민지시대에 일본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지 않은 직업이 유일하게 의사인데, 은엽은 대한의원 시절부터 시가와 함께 근무를 해왔다. 그의 의학적 탐구심이 다방면의 의학을 섭렵하다가 은엽이 한의학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고 한의학의 전문적 학문을 자주 이야기해왔다.

“부장님, 서대문 감옥에 아는 수인이 있는데, 검진 좀 도와주시죠.”

슬쩍 지나간 이야기처럼 말을 건네자 시가가 쳐다보았다.

“거긴 3ㆍ1만세 사건으로 형을 사는 사람들만 있는데 누군가…?”

“백상규라는 승렵니다.”

“승려가 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아는 사람입니까?”

“그 수인이 출가를 안했더라면 제가 그 사람 오쿠가타(おくがた)가 될 뻔했습니다.”

“하하하…!”

대번 큰소리로 웃었다.

“난 조 교수님을 프리 인텔리젠트로 알았는데, 의외군…?”

그러고는 호의적인 얼굴로 물었다.

“교수님도 불교 믿습니까?”

“아닙니다. 난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며칠 뒤 백상규가 영양실조와 불면증이 심해 정밀검진이 필요하다는 감옥 의료실 요청서가 날아들었다. 이른바 시가의 고등어 두 마리(사바사바)가 통했던 것이다.

“조 교수님, 앓는 병에 죽지 않고 꾀병에 죽는다는 조선 속담 있지요?”

시가가 진료요청서를 건네주면서 의미가 담긴 말로 껄껄 웃었다. 은엽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길로 대각교에 사람을 보내 백상규 진료 날짜와 시간을 하동규에게 알려 감옥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백상규를 만났다. 교도관의 안내로 접견실로 들어서는데, ‘광주 생원 첫 서울’이라 했던가, 백상규는 가운을 입은 은엽을 보고 눈자위를 굴리다가 접견실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 동규와 태현 두 제자를 바라보았다.

“진단 요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은엽이 말을 건넸다. 

“온 대지가 약이라는 걸 모르시는군!”

대답이 아리송했다. 하나 수행이 몸에 배 그런지 목소리가 똑바르고 행동이 당당했다. 시가 기요시의 말처럼 꾀병을 진찰하러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훗! 웃음이 나왔으나 꾹 눌렀다.

“여보세요, 그게 의사 앞에서 할 소립니까?”

의사의 권위를 바짝 세웠다. 

“바람 잡는 소리 거두고 거기 의자에 앉으세요!”

잔말 말라는 명령조였다. 한데 의자 앞에 꿋꿋이 서서 진찰을 받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쩐다? 아이들 주사 놓은 때처럼 달래야 하나, 그래도 쉬울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속을 긁어놓자. 은엽은 동규와 태현 두 수좌를 돌아보며 큰 소리를 명했다.

“저 환자를 의자에 꽉 묶으세요.”

대번 환자라고 부르면서 제자더러 스승을 묶으라 해놓으니,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어 제자들을 물리치고 의자에 앉았다.

“환자가 의사 말 듣지 않으면 마취제가 들어갑니다.”

“허허! 어디서 저런 속병에 고약 같은 의사가 왔나….”

아쉬워 엄나무 방석이라, 사세가 부득이한 듯 진료 받을 자세를 취했다. 감옥에서는 진료 외에 투약이나 치료가 금지되었다. 우선 혈압을 재보고 등을 퉁퉁 두드려 청진기로 호흡소리를 들은 다음, 죄수복을 열어젖혀 백상규의 가슴에 청진판을 대는데 손이 달달 떨렸다. 그것은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의 손이 아니었다. 내가 이 나이를 먹고도 처녀가 맞는가, 명운이 엇갈려 신랑 될 사람의 가슴을 의사가 된 뒤에야 만져보는 자괴감이 눈시울을 얄궂게 했다. 체온을 확인한 뒤, 여여원 시절부터 명의소리를 들었던 은엽은 맥을 짚기 위해 백상규 손목을 잡는데, 되레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주는 것 같았다. 상황이 이러한데, 심장 박동과 호흡기 장애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소화기능이 좋지 않군요?”

마름쇠 던지듯 건성 해본 소리였다.

“먹는 것이 오등식이요 국물은 소금물이나 꼭꼭 씹어서 잘 먹고 있소.”

“그릇은 차면 넘치는데, 수행이 넘치면 어떻습디까?”

칠팔월 수수잎 꼬이듯 꼬인 소리를 들이 밀었다.

“요 의사가 진찰하러 온 게 아니라 혀 깨문 소리를 하러 왔나?”

비틀어진 말에는 뒤틀린 소리가 답이다.

“환자가 서서 똥 누는 사람처럼 왜 꼿꼿하냐 그 말이오. 엄살도 피워보고 아픈 척이라도 해야 진찰하는 맛이 날 것 아니오?”

“쭉정이가 고개 숙이는 법 없다더니….”

혼자소리로 의사의 자존심을 건들었다.

“선무당이 마당 기울다할까 봐서요?”

“어서 병명이나 말해보시오.”

“영양실조에 수면교란으로 체중감소와 체온저하가 심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한데 백상규가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 절에서 고기반찬 먹었수? 초근목피가 오등식보다 낫지는 않을 터, 배가 고프지 않는데 먹고, 춥지 않은데 옷 껴입는 버릇장머리 산중 생활하면서 고쳐버렸수. 수면교란이라…, 마음을 비우니 자라 하면 자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 선체조로 몸을 비틀어 기혈을 순환시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과 느낌이 하나 되게 하면, 화두가 저절로 들려 무상삼매에 들어 신체내부가 튼튼한데, 과대망상이 어디로 들어오겠는가?” 

할 말이 없었다. 승려가 낯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개잘량이 아니니, 체면 구기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다.

“수행이 높으면 강철판도 뚫습디까. 몸뚱이도 같이 건강해야 철판을 뚫든지 근본 이치를 찾든지 할 것 아닙니까?”

말을 잘못했나? 대번 간담이 서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의사선생, 요즘 무슨 생각하면서 사는고?”

“거울을 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가 없다는 것을 알았소.”

“거울은 달리는 개처럼 사람을 홀리지.”

“홀리기라도 했으면 혹했을 텐데, 애타게 갈망해도 표징이 없습디다.”

“큰길은 원래 휑하게 비어 적막하느니.”

적막? 미처 생각 못한 말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입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상사람 가운데 오직 나만 안다!”

서로 통하는 뭐가 있었든지 하동규가 나섰다.

“조개는 달을 머금습니다.”

얼씨구, 용성은 하동규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은엽을 보았다.

“보살은 장수에 계신 부모님에게서 낳기 전에 무엇이었소?”

“그야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아버지의 정은 뼈로, 어머니의 난세포가 피와 살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이건 의학적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소.”

“의식이겠죠.”

“그 의식이 아버지의 정은 뼈로, 어머니의 난세포가 살이 되기 이전에 무엇이었냐고 묻고 있소.”

형이하학적으로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된다. 하나 그것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글쎄요…?”

“그걸 찾아보라는 게야!” 

[불교신문3344호/2017년11월11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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