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생명은 포교에 있다”

포교는 단순한 교세확장이 아닌 
중생을 바르게 이끌기위한 책무
40년 넘게 총본산조계사에 주석 
불교발전과 대중ㆍ도심포교 헌신

늘 조계사에서 포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무진장스님은 “포교는 단순히 교세확장의 수단이 아니라 중생을 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종교적 책무”라 정의할 만큼 불교의 생명은 포교에 있음을 깊이 깨우쳐 주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도움말 : 진관스님(조계사) 
                 오심스님(부산 영도 대원사) 
자     료 : <무진장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무진장 대종사 열반2주기 추모세미나 발표문, 
                 혜명당 무진장 대종사 열반4주년 
                - 음악으로 만나는 무진장 대종사 공연 팸플릿

혜명당(慧命堂) 무진장(無盡藏) 대종사(1932~2013)는 부처님 법을 널리 펴는 포교에 수행자로서의 일생을 보냈다. 불교발전은 포교에 있음을 절감하고 스스로 포교일선에 앞장서서 현대사회에서의 불교포교 전범(典範)을 보인 선각자다. 스님을 일러 ‘7무(七無)스님’이라고들 한다. 스님에게는 일곱 가지가 없다는 말이다. 절, 돈, 모자, 목도리, 내복, 장갑, 솜옷 등 일곱 가지다. 무진장스님은 평생 절 주지를 하지 않았으며 돈을 넣을 지갑도 없었다. 돈이 생기면 남을 주었다. 삭발은 출가수행자의 위의(威儀)인데 머리를 가리는 모자를 쓰는 걸 용납하지 않았으며 겨울에도 모자, 목도리, 내복, 장갑, 솜옷 등도 착용하지 않았다. 

평생 청빈의 삶으로 일관한 스님은 그렇게 사는 것이 출가인의 삶이요 수행자의 삶이라 했다. 부처님 법을 바르게 공부하여 바르게 실천하고 남에게 바르게 일러주는 수행이 불자가 해야 할 일임을 일깨웠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포교사로서 스스로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태국·일본 유학을 통해 보다 더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를 갖추었으며 경·율·론 삼장의 연구에 깊은 안목을 지녔다. 불교공부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그 성과를 대중에게 회향하는 포교활동. 무진장스님의 한 생애는 그야말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보여준 삶이었다. 스님은 오늘을 사는 불자에게 불교의 생명은 포교에 있음을 깊이 일깨워주고 있다. 

무진장스님은 포교는 단순히 교세확장의 수단이 아니라 중생을 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종교적 책무라 했다. 포교사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덕망과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남 앞에서 남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일러주는 말이다. 스님 스스로 그렇게 살았기에 당신의 포교사에 대한 이런 당부는 무게감이 더한다. 

무진장스님은 1932년 9월2일 부친 김태익, 모친 이진문의 장남으로 북제주군 조천면 와흥리 223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1950년 18세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다. 1954년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친이 돌아가신 뒤였다. 부친의 별세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출가를 결심했다.

1956년 법주사로 출가하였는데 법주사 주지 스님이 부산 범어사 동산스님에게 인도했다. 그 해 3월15일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불명은 혜명. 1960년 정월 범어사 강원(승가대학) 대교과를 이수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으며 3월 보름 보살계와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4년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수료했다. 1968년 3월에 태국 왓 벤차마보핏(Wat benchamabopit)에서 남방불교를, 1970년 9월 일본 교토대 대학원에서 천태교학을 연구했다. 

197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을 창설하는데 일원이 되었으며 조계종 상임포교사로서 청소년, 대학생, 청년회, 군포교 활동에 진력했다. 

조계사에 주석하기 시작하여 열반할 때까지 40여년을 조계사를 떠나지 않고 도심포교ㆍ대중포교에 온 몸을 바쳤다. 1975년 모교인 동국대 법사. 1980년 제2대, 1989년 제4대 조계종 포교원장을 역임했다. 1987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6년 조계종 포교대상, 2005년 대원상 대상을 받았다. 2006년 동국역경원 후원회장, 2007년 원로회의 의원에 선출됐다. 2008년 대종사 품계를 받았으며 2010년 조계사 회주로 추대됐다. 2013년 9월9월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57년, 세수 82세. 다비식은 범어사에서 봉행, 범어사 부도전에 부도를 모셨다. 2014년 무진장불교문화연구원이 개원, 스님을 기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무진장’이란 법명은…

스님이 ‘무진장’이란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범어사 강원 수학 중(1958년)일 때다. 어느 날 은사 스님이 찾는다기에 스승 앞에 나아갔다. 동산스님은 <금강경 야보송>을 내보이며 판각하라 했다.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 무단역무장(無短亦無長) 본래비조백(本來非白) 수처현청황(隨處現靑黃)’ 현 범어사 대웅전 주련의 글이다. 스님은 판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스승이 하라니까 온 힘을 다했다. 동산스님이 이를 보고는 “니 재주가 참 무진장이구나” 했다. 이후 스님은 스승이 칭찬한 ‘무진장’을 자신의 이름으로 썼다. 

1960년, 스님이 동국대에 입학했을 때다. 스님은 서울 파고다공원(탑골공원)에서 설법을 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상대로. 당시 이 공원에는 거지 못지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런 자리에서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청담스님이 스님의 후원자로 나서서 매월 200원씩 스님에게 주었다고 한다. 물론 이 돈은 스님의 법문을 들은 사람들의 공양비로 쓰여졌다. 

50여 년 전 스님의 이러한 포교활동은 당시로서는 생각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무진장스님 행장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대목이 ‘조계사 지킴이’다. 스님은 1971년부터 조계사에 주석했다. 개인의 명리나 편안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도심포교ㆍ대중포교의 원력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스님은 교리강좌를 비롯하여 불자회 창립법회, 출가·열반절 특별법회, 조계사청년회 정기법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청·장년 및 일반신도들의 체계적인 불교공부를 위한 교리강좌는 보통 3개월씩 이어졌다. 스님이 직접 ‘불교학요론’을 편집, 교재로 썼다. 특히 <육조단경> 강좌는 많은 불자들이 청강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조계사 대승회 법주, 조계사청년회의 토요정기법회 법사 등을 맡아 큰 영향을 끼쳤다. 청소년포교에도 스님은 힘을 다했다.

 

▩ 주옥같은 법문     

 부처님을 거울로 여기고 인생 비춰보라 

“한 생각 어리석으면 범부라 할 것이요 한 생각을 깨달으면 부처라 할 것이며 한 생각이 경계에 부딪치면 곧 번뇌요 보리가 곧 번뇌요 번뇌가 곧 보리니라.”  

무진장스님은 현대 한국불교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날카로운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스님은 불교가 자칫 잘못하면 본연의 모습이 퇴색하여 문화적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있고 훌륭한 지도자와 설법에 논리적 짜임새가 부족해 이리저리 흔들린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한국불교가 과거를 밑천으로 하는 시대착오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선조들의 발자취도 귀한 것이지만 오늘날 그것을 이어갈만한 인물이 없다면 전통은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했다. 스님은 또한 신도들도 변해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믿고 있노라면 언젠가 인생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신도들은 제일 먼저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하며 자기 심성 가운데로 돌아가서 탐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재인식하고 잘못된 성격을 하나하나 교정해 가면서 부처와 닮아가야 된다. 그런 안목으로 가정과 조국을 보고 국제사회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또 ‘불교는 지혜의 종교이다. 항상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점검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부처님 앞에서 나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부처님을 바라볼 때 거울이라고 여기고 부처님을 통해 내 인생을 비춰보아야 한다. 지금 내 인생은 어떠한 모습으로 가고 있는지 불성적인 자기를 재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탐구요 수행이다. 불자가 절에 다니는 것은 각자의 정신세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를 통해서 나의 인생을 이렇게 창조적으로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기위해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이 불자들의 올바른 자세다. 그런 공부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반드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진정한 복’이라고 했다. ‘출가수행인은 현대의 전문적 지식과 격변하는 사회에 대하여 알려고 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과학과 현실세계를 무작정 경시(輕視)하다보면 자칫 이 시대의 미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수행자들이 하는 법문 내용에도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스님은 지적했다. 지식 면에서 신도들이 출가 수행자를 앞질러 가는 시대임을 깊이 인식하고 가르침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불교신문3343호/2017년11월8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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