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語

[주장자柱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르시기를]

佛祖場中不展戈(불조장중불전과)어늘
부처님과 조사가 계시는 곳에는 다툼이 없거늘
後人剛地起嚆訛(후인강지기효와)이라
후인이 공연히 옳고 그름을 논함이로다.
道泰不傳天子令(도태불전천자령)이요
진리의 도가 넓어지면 천자의 법령을 전할 것도 없음이요,
時淸休唱太平歌(시청휴창태평가)이로다

세상이 깨끗하고 깨끗한 시절에는 태평가를 부를 필요조차 없음이로다.

금일 설정 총무원장스님의 취임을 경하慶賀하노니,

종단宗團의 대화합과 종풍宗風의 선양宣揚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임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은 두 번의 소임기간동안 신심과 원력으로

종단의 안정과 중흥에 초석을 놓고 교권수호에 기여 하였기에 그 노고를 치하致賀하는

바입니다.

우리 대한불교조계종의 근간根幹은 수행修行입니다.

이 땅에 불법佛法이 전래된 이래 1700년 동안 면면부절綿綿不絶 했던 불법의 깃발을

다시금 세우고 승풍僧風을 진작振作하여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어야 할 것입니다.

숲이 무성해 질 때 새들도 날아오고 온갖 산짐승들이 돌아와서 원래의 자연생태계로 복원

되듯이 우리 조계종단도 수행修行과 청정淸淨이라는 선禪의 정신으로 돌아 갈 때 종단

宗團이 더욱 국민들과 불자佛者들의 귀의처로서 자리 매김을 하게 될 것입니다.

총무원장스님은 종단내의 갈등과 분열을 참회懺悔와 포용包容으로 섭수攝受하여 원융

화합圓融和合의 길로 나아가서 새로운 천년불교의 초석을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남북관계는 일찍이 없었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남북한은 총칼이 아니라 정신 ·내면의 변화를 통하여 민족의 동질성同質性을 회복

하고 이 땅 한반도에서 전쟁 없는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야 말로 세계평화에

공헌貢獻 하는 것입니다.

국민 개개인箇箇人 모두가 일상생활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

인가?’ 하는 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여 마침내 화두를 타파打破하여

크게 쉬는 땅에 이르게 되면, 진대지盡大地가 그대로 황금 땅으로 변합니다.

한 번 황금 땅이 된 후로는 억만 년이 다하도록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렇듯 불법佛

法의 진리에 눈이 열리게 되면 누구나 좋은 시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 때는 가는 곳마다 황금의 세계, 부처님의 열반涅槃의 세계를 이루기 때문에, 거기에는

모든 고통과 가지가지의 번민, 갈등을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필경畢竟에 이 열반의 국토에 당도해야만 투쟁도 없어지고 가지가지의 고통도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열반의 국토에 이르지 않고서는 행복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당나라 시대에 마조馬祖 선사께서 항시 대중에게 법문하시기를,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만인이 다 갖고 있는 심성心性의

바탕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천 사람이고 만 사람이고 모두 다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건마는, 이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때문에 중생衆生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성인聖人의 용심用心, 즉 성인의 행行을

행하지 않고 중생의 업業에 놀아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선수행을 잘 해서 마음의 번뇌가 다하고 참부처를 보게 되면, 그대로

부처가 되어서 다시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진리의 근본원리입니다.

마조 선사의 제자 남전南泉 선사께서는 출세出世하셔서 이렇게 법문하셨습니다.

“마조 선사께서는 ‘마음이 곧 부처다’ [卽心卽佛] 라고 법문을 하셨지만 왕노사王老師는

달리 이르리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님이라’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이렇게 말하는 것에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이에 대중 가운데서 조주趙州 스님이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예배禮拜하고 물러갔습니다.

여기에 큰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에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라고 하는데, 큰 절을 한자리 하고 나간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법문을 바로 볼 줄 알아야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부처

님의 열반국토 아닌 곳이 없고, 백 천 염라대왕이 와서 잡아가려 해도 붙잡히지 않는

당당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조 선사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 옳으냐,

남전선사의 ‘비심비불非心非佛’이 옳으냐?

春來草自靑(춘래초자청)이로다.

봄이 옴에 풀이 스스로 푸름이로다.

남전 선사께서 ‘불시심不是心 불시불不是佛 불시물不是物’이라고 말씀하고는

“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데, 조주 스님이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예배하고

물러갔으니,

시회대중은 두 분 도인을 아시겠습니까?

과연, 그 스승의 그 제자로다.

마조馬祖·남전南泉·조주趙州 일가一家의 가풍을 아시겠습니까?

不是寃家不聚頭(불시원가불취두)로다.

원수의 집이 아니면 머리를 모으지 아니함이로다.

[주장자柱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佛紀 2561年 11月 1日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法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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