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여래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그대를 구원하러 왔노라” 
이런 속삭임 기대해선 안 돼
본래 청정한 마음의 눈을 떠야

수보리여,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본다면, 전륜성왕도 여래일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거나 또는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면, 이 사람은 그릇된 길 가는지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로다.

제26분 후반부는 부처님께서 전륜성왕의 예를 들어 훌륭한 형상만으로 여래라 할 수 없음을 말씀하신 후, 수행의 그릇된 방법을 지적하셨다. 

싯다르타의 아버지 숫도다나왕(Suddhodana, 淨飯王)은 유명한 선인(仙人)들을 불러 싯다르타의 미래를 물어보았는데, 대부분 가장 위대한 전설의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전 세계를 통치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시타(Asita) 선인만은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싯다르타의 몸에 있는 서른두 가지 특별한 형상(32相)은 전륜성왕과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공통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얘기는 비록 같은 신체적 특징을 지녔다고 해도 어떤 방향으로 노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불교에 입문하기 전인 중학교 시절에 나는 시간 나는 대로 사찰을 찾았었다. 고풍스런 법당에 앉아있으면 부처님이 계신 곳이 이런 분위기인가, 극락세계라는 곳이 이처럼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법당의 불상이나 불화 속 부처님 모습을 보며 그 미소와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리고 때때로 부처님께서 나에게 무언가를 말씀해주시려는 듯한 강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불교에 처음 발을 디디는 초심자들은 바로 이런 체험들을 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지금의 현실을 떠나 신비한 불국토를 꿈꿀 것이다. 또한 부처님으로부터 무언가 중요한 계시와 같은 것을 듣고 싶어 할 것이며, 특히 어려움에 봉착하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불자들이라면 특별한 가피(加被)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나는 불교학생회를 통해 정식으로 불교에 입문한 직후 선사들의 법문과 일화를 기록한 선어록(禪語祿)을 여러 가지 접하게 되었고, 불교학을 전공한 교법사 선생님에게서 체계적으로 교학을 익혔다. 또 스님들의 지도로 <법화경> 등의 경전을 공부하게 되었었다. 그래서 출가할 때는 신비로운 환상들로부터 깨끗이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출가한 후 만난 신도님들 가운데 많은 분들은 끝없이 신비한 환상을 좇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 환상을 좇는다면 어쩌다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깨닫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한 길을 가면서 그것이 불교인 것처럼 착각하게 될 것이다.  

산스끄리뜨본(梵本)과 다른 한역본(漢譯本)을 보면 위의 게송 외에 또 하나의 게송이 있다. 그 가운데 진제(Paramrtha, 眞諦)스님 역본은 다음과 같다. ‘법으로써 마땅히 부처를 보라(由法應見佛). 조어사는 법으로 몸을 삼느니라(調御法爲身). 이 법은 대상으로 아는 것 아니니(此法非識境), 법은 매우 깊어 보기 어려우니라(法如深難見).’

형상과 소리에 의지해서는 결코 여래를 볼 수 없다. 오직 깨달아 스스로 진리와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깨닫지 못한 사람에겐 불상도 물질일 뿐이며 경전도 종이와 글자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오색찬란한 빛에 쌓인 부처님이 눈앞에 나타나 금빛 손으로 이마를 만져 주며, “내가 그대를 구원하러 왔노라” 이렇게 속삭여주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병에 걸리면 눈과 귀와 입이 동시에 마비될 것이니, 천하의 명의인 화타(華)나 허준(許浚)이 되살아나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여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엄한 모습과 아름다운 음성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여래를 만나려면 모름지기 본래 자신에게 있는 청정한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언제 어디에서나 여래(如來)와 불국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337호/2017년10월21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