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불타도 진리의 빛은 타지 않는다

 

여래의 참모습은 ‘상호’가 아니다 
번뇌의 완전 소멸인 열반에 들어 

상락아정 경지일 때 비로소 여래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고 옳도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과 같아서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되느니라.”

제26분은 한역(漢譯)에 오류가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구마라집스님 한역본 가운데 다음 부분이 그렇다. ‘須菩提言 如是如是 以三十二相觀如來 佛言 須菩提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 轉輪聖王卽是如來 須菩提白佛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 우리말 번역은 이렇다. ‘수보리가 사뢰었다. 그러하옵니다.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전륜성왕이 곧 여래일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으로 여래를 본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13 여법수지분(如法受持分)에서 동일한 질문을 하셨고, 수보리존자는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답을 하였다. 그런데 똑같은 질문에 수보리존자는 정반대의 답을 하였고, “전륜성왕도 곧 여래겠구나”하는 부처님의 핀잔을 듣고서야 상호만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답을 하였다. 수보리존자가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대개의 해설서에는 강한 부정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역시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수보리존자는 이미 공(空)의 이치를 깨달았으며,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1981년 중앙승가대학에서 대장경을 보기 시작하면서 <금강경>의 여섯 가지 한역본(漢譯本)을 모아 비교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구마라집 역본만 수보리존자의 답이 다르게 되어 있었다. 이 문제를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범어학자의 도움을 받아 산스끄리뜨본(梵本) 금강경을 살펴보았다. 역시 구마라집 역본과 달랐다. 그렇다면 구마라집스님이 오역을 한 것일까?

구마라집스님이 금강경을 한역(漢譯)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60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옛날에 경전을 보급한 방식은 붓으로 옮겨 적는 필사(筆寫)였는데, 무수히 옮겨 적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제13분에서 정확하게 번역을 했던 구마라집 스님이 제26분의 동일한 산스끄리뜨어 경문을 전혀 다르게 번역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한역본의 경문을 구마라집스님 역경방식으로 아래와 같이 바로잡고 우리말로 옮겼던 것이다.

須菩提言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佛言 如是如是 須菩提 如汝所說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부처님은 원만한 모습을 갖추셨다. 그렇다고 원만한 모습을 갖춘 이를 모두 부처님이라고 하진 않는다. 아무리 훌륭해도 형상이 있는 것은 변하다가 소멸되는데, 소멸되는 형상만으로는 여래라고 할 수 없다. 큰 깨달음으로 번뇌의 완전한 소멸인 열반(涅槃)에 들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법신경지일 때 비로소 여래하고 하는 것이다.

30여 년 전 모 사찰에 큰 화재가 발생했었다. 그 화재로 비로자나불상이 녹아버렸다. 뉴스를 듣던 불자들이 울며 내게 물었다. “비로자나불이 타 버렸으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내가 답했다. “세상이 다 타도 진리이며 빛인 비로자나불은 타지 않습니다. 화재로 탄 것은 만들어 모신 불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성의 비로자나불을 찾으시면 됩니다.”

[불교신문3336호/2017년10월11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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