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알밤 몇 개를 주웠다. 여기저기에서 풀 베는 기계소리가 들리더니 오늘은 조용하다. 명절을 앞두고 윗동네 산소 주변 정리가 끝났나보다. 며칠 연이어 하늘이 청명하고 구름도 높아서 초가을 기분을 즐기고 있다. 여름날의 그 맹렬한 폭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솔솔 부는 바람에 가을 향기가 실려 온다. 이런 시기가 되면 새삼 선한 눈빛이 되고 이웃에게 더 친절해지고 싶다. 

체코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 ‘가을이 우리에게 묻는 날이 있으리라. 여름에는 무엇을 했느냐고?’하는 질문이 있다. 가을은 이렇게 분주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어느 스님의 토굴을 방문했더니 그곳에 ‘고요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는 글귀가 있었다. 진정 이 가을에는 스스로의 고요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삶이 우리에게 ‘너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어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가을에 욕심 하나쯤은 내려놓아야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것이다. 티베트를 여행하면 구토 설사 등 여러 고산증세가 나타나는데 이럴 때는 산을 더 오르지 말고 지체 없이 내려가면 다시 호흡이 편안하게 된다.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다가는 심장이 멎을 수도 있으므로 머뭇거리지 않고 하산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이것을 행복 공식에 대입하면 더 명료해진다. 지금, 삶이 힘들고 지친다면 욕심의 수위를 조금 줄이면 해결될 수 있다. 즉 욕심의 기압을 낮추면 삶의 여정이 느슨해진다는 뜻. 따라서 불교의 행복 법칙은 삼독(三毒)의 산에서 하산하라는 것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압축하고 또 압축하면 다섯 글자로 정리되는데 그것은 ‘욕심 버려라’이다. 그렇다면 욕심의 치료제는 만족이 되는 셈이다. 고금을 통틀어 만족은 행복의 길이었고, 불만족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공익광고에 ‘흡연은 질병, 치료는 금연!’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것을 부처님 말씀으로 재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욕심은 고통, 치료는 만족!”

[불교신문3332호/2017년9월23일자] 

현진스님 청주 마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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