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1 (2017).9.21 목

사이드바 열기
상단여백
HOME 기획&연재 기획연재 범종소리 우주를 깨우다
[소설/ 용성진종조사 ] <33>앞은 무엇이고 뒤는 무엇인가④
  •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 승인 2017.09.13 14:15
  • 댓글 0

 

용성은 모아놓은 금괴
세 상자 내놓았다.

“이게 뭐요?”
“이 광산에서 캐 모은 금이오.
이걸로 함경도 포수들을 모두 모아
독립군으로 편성해 보시오.”

“허허허…!

이 금괴가 아니라도 그럴 판인데
좋소이다. 이 돈으로
용성당 뜻에 따라
승군처럼 독립군을 편성해
민족정신을 되찾는 활동에
들어가겠소.” 

‘악구교인부로아(惡狗咬人不露牙)’라, 사나운 개가 사람을 물때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말은 일본 헌병경찰제를 두고 한 말이다. 왜놈들 무단통치시기(1910~1919년)의 헌병경찰제도는 군인인 헌병이 경찰업무까지 겸했다. 그들 임무가 첩보수집, 의병토벌, 검사사무대리, 범죄즉결, 민사소송 조정, 집달리 업무, 산림감시, 어업단속, 징세원조, 농사개량, 식목, 부업장려 다방면에 걸쳐 끼어들었다.

헌병경찰제 첫 번째 업무가 ‘첩보수집’인데, 여기에 걸려들면 ‘니락끄리스토(ブラックリスト)’, 즉 ‘블랙리스트(blacklist)’에 오른다. 이 ‘니락끄리스토’에 이름이 오르면 사람을 앉혀서 병신 만든다. 오세창이 장안 사람들 머리 돌아가는 것을 보니 ‘합방’인지 ‘병탄’인지 10년이 가까워오자 반은 친일로 돌아선 것 같았다. 일본사람들이 학교를 세우고 일본말을 가르치더니, 학교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일본말로 대화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골목을 혼자 걸어가면서도 “지지와 공이지오 니기떼, 하화아 신니찌오(父は抗日を握って, 母は親日しよう)” 소리를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이 말은 ‘아빠는 항일분자 때려잡고, 엄마는 친일하자’는 말이었다. 그 말이 좀 더 단순화 되더니, “다까기 하니찌 노시우!(たたく はんにち ぶんし!)”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은데, 이 말은 “때려잡자, 반일분자!”다.

세상이 이 지경으로 바뀌니, 그림자 없는 귀신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사에 그림자가 없을 수 있는가. 젓갈 가게에서 중을 찾는다더니, 오세창은 용성선사가 말한 한용운을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중은 자기가 사는 집이라는 것이 없고, 산속의 모든 절이 중들 집이다. 중은 이마빼기만 있고 뒷꼭지가 없다는 말은 들었으나, 도대체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한용운은 그림자조차 없었다.

사혹(思惑)이 뭐냐?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좌고우면하는 것이다. 성큼 나서지 못한 것, 이게 지랄이다. 할 수 있을 때 못하면 하고 싶을 때도 못한다. 한용운이 없다고 망설일 것 뭐 있는가. 오세창은 권동진을 만나 일본놈 판을 뒤엎자고 계획을 짜 천도교 교주 손병희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물론 유리한 조건이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때 비린내 맡은 강아지처럼 최린이 끼어들었다. 최린도 같은 교우이기 때문에 끼어들어도 괜찮은 자리였다. 교주 손병희는 이야기를 듣고 오세창, 권동진, 최린에게 이 문제의 세부추진계획을 일임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그림자 없는 귀신이 되어 동분서주했다. 그러다보니 세월이란 물처럼 흐르는 것이라 병진년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홍범도가 사는 죽평리는 용성선사가 금을 파내는 금광과 지척의 거리여서 자주 만났다. 하루는 학린사로 올라왔기에 같이 차를 마셨다.

“어떻던고?”

대선사답게 앞뒤 소리 싹 빼고 선문답하듯 물었다. 범도는 당기일구(當機一句)라고 들은 풍월이 있었으나 전광석화와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얼쯤얼쯤하다가 지담대사로부터 배운 풍월 값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원숭이가 물에 빠진 달을 잡자는 소리요?”

그런 소리라면 세속 물이 들어 새까맣게 들어버렸다고 할 판인데, 용성이 먼저 말을 받았다.

“작아도 대추이고 커도 소반이라더니, 그래도 근기는 남아 있구먼. 내가 묻는 말은 그게 아니고 맹수 사냥꾼이 몇 사람이나 되더냐? 그 말이오.”

그제야 말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북청 이쪽만 30명이 넘소.”

“그럼 이원, 단천, 갑산, 풍산, 신흥, 함흥까지 다 보태면 100명은 넘겠네?”

“나도 은사 지담대사가 이순신 후손이라 임진왜란 때 서산, 사명의 활략상과 민족의식까지 귀가 아프게 이야기를 들었소. 이제 보니 함경도 포수들을 승군으로 편성하라 그 이야기구먼?”

“이름이야 어떻든 민족의식이 먼저 아닌가?”

“그건 그려….”

용성은 모아놓은 금괴 세 상자 내놓았다.

“이게 뭐요?”

“이 광산에서 캐 모은 금이오. 이걸로 함경도 포수들을 모두 모아 독립군으로 편성해 보시오.”

“허허허…! 이 금괴가 아니라도 그럴 판인데, 좋소이다. 이 돈으로 용성당 뜻에 따라 승군처럼 독립군을 편성해 민족정신을 되찾는 활동에 들어가겠소.”

너털웃음을 웃으며 금괴를 받았다.

“부족하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오시오. 내 뒤를 대드릴 테니….”

“암! 용선선사 정성이 이만하니,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외다.”

그러고 헤어졌다.

금이 무엇인가. 용성은 상당량의 금이 모아지자 금에 대해 생각해 봤다. 금은 유통한다는 점에서 화폐를 대신할 수 있지만, 한편 사치품으로 뱃속에 기름기만 번들거린 호사가들을 더욱 호화찬란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 점에서 그들을 아주 넉넉하게 해주니 더욱 많이 더욱 욕심껏 갖고 싶게 한다. 그 속에는 아무리 많이 가져도 족할 줄 모르는 마약이 들어 있는데, 이 마약이 욕심이다. 욕심이 곧 탐심이다. 그래서 범어(Sanskrit)에서는 금(sma)을 ‘검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 다음 어두운 것, 그 다음 노란색, 그 다음 황금색, 아름다움으로 변해간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금이 환상요술 같은 특성을 갖고 때문이다. 금은 길이가 같은 세 개의 결정축이 서로 직각으로 만나는 결정체(等軸晶系)로서 주로 납작한 잎처럼 생긴 것부터 그 모양이 각양각색이다. 타원형처럼 생기거나, 입자모양의 알갱이이거나, 나뭇가지처럼 죽죽 뻗어나가거나, 갯솜처럼 탄력이 있어 수분을 잘 빨아들이는 푹신푹신한 덩어리와 같이 다양하다. 활용 면으로 보면 두드리거나 꽉 누르면 얇게 펴지는 성질이 있어서 백짓장보다 몇 배 얇은, 번쩍번쩍 빛나는 종이로 만들 수 있고, 잡아당기거나 두들겨도 끊어지지 않아 콩알만 한 금으로 십리쯤 긴 금실을 뽑을 수 있다. 이래서 일곱 가지 보배(七寶) 속에 한 몫 끼는데, 금에 욕심이 발동하지 않을 자 나와 보라고 해라. 누구나 욕심을 내기 십상인데, 욕심을 내다가 얻어지는 것이 없으면 꼬라지를 내고 그래서 어리석어진다. 이게 삼독(三毒)이란 것인데, 걸식으로 수행하는 자는 금과 상관없는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검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즉, 호사가들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앞에다 누를 황자를 넣어 황금이라 부른다.

깨달은이를 빼놓고 황금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건 맹랑한 거짓말이다. 욕심이 눈을 가리면 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부러워하게 된다. 이쯤 되면 눈에 헛것이 잡혀 죽은 사람 손에 든 떡도 빼앗아 먹고, 말똥도 밤알로 보여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용성은 금을 그만 캐기로 했다. 하나 캐 모은 금은 애초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경성으로 가져간다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의 눈에 노출된다면, 포기할 것 다 포기하고 묵묵히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공연한 탐심을 부추겨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았다. 수행하는 사람들도 많은 금을 보면 수행을 팽개치고 얼씨구나 삼독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겨 놓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남원 갑부 임동수 거사였다.

용성은 사람을 보내 임동수 거사를 북평으로 올라오라 했다. 임 거사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아무도 모르게 남원 운봉 그의 집으로 금을 옮기기로 했다. 그런데 분량이 너무 많아 한두 사람으로는 운반이 난제였다. 만약 가는 길에 산적이라도 만난 날이면 지금까지 고생이 도로아미가 될 판이었다. 할 수 없이 홍범도의 협력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한몫 보자고 냄새를 맡은 무뢰배나 불한당을 납작하게 깔아뭉갤 수 있는 사람은 총을 멘 맹수사냥꾼밖에 없다. 용성은 그들을 호위무사로, 짐꾼은 몰이꾼으로 위장해 금을 무사히 임 거사 집으로 옮겼다.

용성은 곧 금광을 운영하다 폭삭 망했다는 소문을 내고, 북청군수 강홍도에게 폐광신청을 낸 뒤 경성으로 돌아왔다. 봉익동 대각교당으로 돌아오니, 오랫동안 곁에 있던 시자가 원주 소임을 맡아 교당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 시자에게 재현(在玄)이란 이름을 주어 제자로 만들고, 전에 사동에서 ‘조선불교임제종중앙포교당’을 설립, 개교사장을 맡고 있을 때 친분이 있는 이공(李公)이 조카를 데리고 찾아와 <선문촬요>와 <임제록>을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이름이 이완규(李完圭)였다. 몸이 건장해진 이완규가 다시 찾아와 행자로 있었으므로, 계를 받게 해 태현(太玄)이라는 이름을 주어 수행시자로 삼았다. 

[불교신문3330호/2017년9월16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SNS에서도 불교신문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