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관장 스님, 굿모닝 해브 나이스 데이.” 영어를 배우니 신식으로 아침 인사를 해야 한다는 순남 할머니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경쾌하다. 매주 수요일, 당신 키만한 기타 케이스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왼손에 악보를 들고 프로그램실에 들어가는 걸음이 무대에 오르는 오케스트라 단원처럼 위풍당당하다. 익숙한 곡이 복도에 울려 퍼지면 기타연주에 맞춰 나도 따라 불러본다. 어르신들이 처음 기타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로 음이 맞지 않아 도통 무슨 곡을 연주하고 계신지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지역행사에 초대받고 재능기부활동으로 인기를 누리고 계신다.

내겐 우리 어르신들의 무대가 그 어떤 연주보다 멋있고 감동적이다. 삶의 애환과 인생의 화음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눈 감고 어르신들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어릴 적 할머니가 아픈 배를 어루만져주듯 위로가 되는 것 같다.

기타반 수업을 마친 순남 할머니가 물결무늬 원피스를 찰랑거리며 중국어교실로 향한다. “어르신, 오늘 너무 매력적이신데요. 반할 것 같아요”라고 하자 “아이고 고마워라. 관장님이 칭찬해주니 더 신나네요”라고 하신다. 올해 연세를 여쭤보니 “에이, 팔십셋 밖에 안되요. 어서 중국어 배워서 중국여행 한번 가려구요.” 마치 수학여행 기다리는 아이의 들뜬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복지관은 나의 두 번째 삶이에요. 이곳에서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고 있어요.”

어려운 시절 못 배운 한(恨)을 평생 갖고 있었는데 이처럼 열정으로 공부하고 익히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웃으시는 두 뺨이 만추홍엽 물들인 각시처럼 곱다.

나이 드는 것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깊어지는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복지관 업무를 하면서 어르신들의 경험과 포용력을 배우고 삶의 연륜에서 나오는 알맹이 말씀을 듣게 된다. 인생의 봄날이 따로 정해져 있겠는가. 신나고 열정 있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산다면 할매가 되어도 나날이 봄날일 듯싶다.

[불교신문3330호/2017년9월16일자] 

일광스님 거창 죽림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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