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법문 듣고 화가 눈 녹듯 사라지다

죽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증오’

“화냄을 잘라내어 죽이면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다

화냄을 죽여 없애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

죽여 없애고 싶은 것은 
단 하나, 화냄뿐이다”

바라도사와는 다닌사니가
항상 중얼거리던
예배문을 외우며
부처님의 두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를 올렸다. 

“나모 다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바라문 바라도사와의 아내 다닌사니는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바라문 출신이었다. 하지만 삼보에 귀의한 후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수시로 예배를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다닌사니의 예배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짧은 문구를 입으로 외우는 것이었는데 바라문 수행자들을 섬기는 바라도사와의 눈에는 아내의 이런 행동이 몹시 거슬렸다. 바라도사와가 초대한 바라문 수행자들이 집에 오기로 한 전날, 그는 다닌사니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예배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다닌사니는 자신이 부처님께 올리는 예배는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분노한 바라도사와는 준비한 칼을 꺼내들고 그녀를 협박했다. 

종족 명성 덕분에 죽음 면한 아내

바라도사와가 무서운 얼굴로 칼을 꺼내들었을 때, 다닌사니는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며 눈을 감았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다닌사니의 입에서는 부처님을 향한 예배문이 흘러나왔다. 우리네 어머님들이나 보살님들이 일상 속에서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외우는 것처럼 다닌사니의 예배는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칼날이 번쩍하며 허공을 갈랐으나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차마 아내를 죽을 수 없었던 바라도사와가 칼로 침대를 내리친 것이었다. 다닌사니의 목을 베려는 순간, 바라도사와는 아내의 혈통이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만약 다닌사니를 충동적으로 죽여 버린다면 후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극단적인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바라문들 앞에서 부처님 예경하니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눈과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폭력을 사용하여 아내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행동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이러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여인들은 여전히 많다. 천만다행으로 다닌사니는 종족의 명성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바라문 신분에 대한 교만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바라도사와에게 다닌사니의 혈통은 큰 자부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바라도사와는 아내가 아닌 침대에 칼을 내리친 것이다.  

살기로 가득했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다닌사니는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남편이 초대한 바라문 수행자들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한편 마당을 깨끗하게 청소하여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바라문 수행자들이 오기 시작했다. 바라도사와가 초대한 500명이 모두 도착하자 다닌사니는 얼른 목욕을 한 뒤 새 옷을 차려입고 곱게 화장을 한 뒤 장신구를 걸쳤다. 안주인답게 손님을 맞기 위해서였다. 아름답게 단장한 다닌사니를 본 바라도사와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다닌사니는 음식이 차려진 탁자 앞에 서서 우유를 넣어 지은 밥을 황금으로 만든 주걱으로 퍼서 밥그릇에 차례차례 담아냈다. 먼저 도착한 바라문 수행자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미소를 지은 채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맛있게 밥을 먹었고, 나중에 도착한 이들은 탁자 앞에 줄을 서서 자신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렸다. 바로 그때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다닌사니가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밥그릇을 옮기던 중 탁자 모서리에 발을 부딪친 다닌사니가 통증을 참지 못해 주저앉은 것이었다. 순간 탁자가 흔들리면서 위에 있던 접시들과 밥이 담긴 그릇들이 미끄러졌다. 애써 준비한 음식들이 엉망진창이 되기 직전, 다닌사니는 한손으로는 흔들리는 탁자의 다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떨어지려는 접시를 잡았다. 덕분에 요란할 뻔했던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다닌사니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을 향한 예배문이 흘러나왔다.

“나모 다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다닌사니가 이 예배문을 세 번 외우는 동안 시끌벅적했던 마당이 조용해졌다. 500명의 바라문 수행자들은 일제히 손과 입을 멈췄다. 하지만 고요함은 잠시였다. 다닌사니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 바라문 수행자들은 눈썹을 찡그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바라도사와는 고개를 흔들며 변명을 하며 안간힘을 썼으나 바라문 수행자들은 밥그릇을 내려놓은 채 썰물처럼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빈 밥그릇들만 어지럽게 흩어진 마당에는 바라도사와와 다닌사니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다.

증오를 품고 부처님께 달려가

“이 사람아, 바로 이런 사단이 일어날까봐 내가 어젯밤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는데 결국엔 모든 걸 망쳐버리고 말았구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란 말이오? 게다가 바라문 수행자들이 화가 나서 돌아가 버렸으니 돈은 돈 대로 들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며 이 귀한 음식을 준비하고도 아무 이익도 없는 일이 되고 말았소. 이 손해를 어찌한단 말이오?”

바라도사와는 다닌사니를 향해 생각나는 모든 폭언을 쏟아냈다. 바라도사와가 흥분을 하면 할수록 다닌사니의 얼굴은 오히려 고요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자신의 말을 듣고만 있는 아내를 보던 바라도사와는 다닌사니에게 화를 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닌사니를 한참 노려보던 바라도사와는 마음 속 가득 분노와 증오를 품은 채 부처님이 계신 죽림정사로 달려갔다. 

‘수행자 고타마가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질문을 하리라. 그래서 다닌사니가 하늘처럼 받들어 섬기는 그를 만인의 조롱거리로 만들리라. 이 바라도사와가 수행자 고타마와 논쟁을 하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이 세상에 전해지면, 바라문 수행자들은 다시 나의 집을 찾을 것이며 나의 초대에 응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바라문 바라도사와의 명예는 높아질 것이요, 수행자 고타마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을 던지지만

그렇게 속으로 다짐을 하며 걷는 동안 바라도사와는 어느덧 부처님 앞에 도착했다. 부처님을 뵌 바라도사와는 예배나 인사를 아예 올리지도 않은 채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오, 수행자 고타마여! 무엇을 죽이면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습니까?”

바라도사와는 부처님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엇을 죽이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집니까?”

바라도사와는 딱딱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수행자 고타마께서 죽여 없애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처님 앞에 달려가기까지, 바라도사와는 수많은 번민을 거듭했다. 그는 아내 다닌사니에 대한 화를 참고 참았고, 부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았다. 하지만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바라도사와는 다닌사니를 향해 칼을 휘둘렀고, 부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했다. 하지만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는 아내를 죽이지 못했다. 아내에게 풀지 못한 분노는 다시 고스란히 부처님을 향했다. 

“바라문이여, 화냄을 잘라내어 죽이면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다. 화냄을 죽여 없애면 근심과 걱정이 사라진다. 여래가 죽여 없애고 싶은 것은 단 하나, 화냄뿐이다.”

바라도사와의 질문은 분노와 노여움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예의와 정중함을 가장한 목소리는 처음에만 단정했을 뿐 점점 딱딱해졌다. 스스로 죽여 없애지 못한 화는 바라도사와의 몸을 타고 돌아다니며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고, 목을 꽉 막히게 만들었으며, 눈동자에는 붉은 핏발을 터뜨렸다. 한 마디로 마음 뿐 아니라 몸도 고통스러웠다. 누군가를 죽이기에 앞서 화로 인해 자신이 죽을 것 같았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바라도사와에 비하여 부처님의 얼굴은 평온했고 답변은 간결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하다

바라도사와는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부처님께 질문을 하기 전, 그는 분노와 화로 인해 죽을 것처럼 괴로웠다. 화가 머리끝까지 쌓여 있었기에 바라도사와는 오히려 부처님의 법문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운 부처님의 답변을 듣는 순간, 화산처럼 부글부글 터져 나올 것 같던 마음 속 분노와 증오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맑고 개운해진 눈으로 부처님 앞으로 다가간 바라도사와는 다닌사니가 항상 중얼거리던 예배문을 외우며 부처님의 두 발에 이마를 대고 예배를 올렸다. 

“나모 다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그 후 바라도사와는 아예 삭발을 하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짧은 답변을 화두로 삼아 항상 분노나 화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을 했다. 얼마 후 교단에는 아라한 한 분이 늘었다. 출가 전에는 ‘나모’ 소리조차 귀에 거슬려하던 바라도사와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불교신문3329호/2017년9월13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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