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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조선시대 불상] <16> 고창 선운사 비로자나삼불상연화장 동방만월 서방극락 세계 ‘장엄’
  •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 승인 2017.09.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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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불교 신앙 형태 상징 
대웅보전 주불 비로자나불 봉안
무염 스님 등 12명 조성에 참여
좌우협시 약사불 아미타불 확인

고창 선운사 비로자나삼불상. 사진 왼쪽부터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약사불.

제24교구본사인 고창 선운사는 봄에는 동백, 늦여름 초가을에는 꽃무릇,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한 고승이 도적떼를 교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소금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선운사에서는 오는 23일 ‘1500년의 값진 인연 선운사 보은염’이라는 주제로 문화제를 개최한다.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 고창은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선운사와 산내 암자, 그리고 그곳에서 수행했던 스님들로 인해 유명하다. 조선 후기 화엄학에 큰 자취를 남긴 설파상언(1707~1791) 스님과 그의 법맥을 계승한 백파긍선(1767~1852) 스님을 비롯해 구한말 청정 율사였던 환응탄영(1847~1930) 스님 그리고 근대불교의 선구자 영호정호(1870~1948) 스님을 배출한 곳이다.

선운사 창건에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577년 백제의 검단선사 창건설, 신라의 진흥왕 창건설, 그리고 신라의 의운스님 창건설 등이다. 이를 반영하듯 선운사 산신각에는 도솔산 산신으로 검단선사와 의운스님이 나란히 호랑이와 동자를 중앙에 두고 좌우로 배치된 1915년에 그려진 불화가 있다. 이 보다 앞선 1910년에 이홍구(1879~1944)가 지은 <선운사풍경가>에는 ‘두 노인이 부채를 들고 호랑이를 기대고 있는데 신령이 강림한 듯하다. 검당선사와 의운국사의 진영이다’라고 했는데, 검당선사는 검단선사의 다른 이름이다. 1915년에 그려진 불화 속의 두 스님은 이홍구가 1910년에 보았던 그림 속의 스님들과는 달리 지팡이를 들고 있다.

월호자 현익이 1707년에 쓴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兜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는 신라 진흥왕 창건설을 따르고 있지만, 선운사 창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1713년에 기록한 <대참사사적기(大懺寺事蹟記)>에는 선운사 창건이 기록되어 있다. 즉 진흥왕이 왕위를 피해 선운산의 좌변굴에 머물던 중 꿈에 미륵삼존이 암석을 깨고 출현하는 것을 보고 중애사와 선운사 그리고 도솔사를 세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했다는 설이 현재는 훨씬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4년 부여문화재연구소가 선운사 동불암 마애불 주위를 발굴했을 때 백제시대의 평기와가 발견되어 선운사 창건이 백제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백제 위덕왕 때인 577년에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했다는 설화는 소금 제조법과 관련되어 있다. 검단선사는 용이 사는 연못을 돌과 숯으로 메워 선운사를 창건했고, 인근 마을의 도적떼를 교화시켜 천일염 제조법을 가르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토록 했다. 이들은 봄가을로 절에 소금을 갖다 바쳐 이를 보은염(報恩鹽)으로 불렀고, 자신들이 사는 마을도 검단선사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검단리라고 했다고 전한다. 올해 시작된 문화재청의 전통사찰 문화재 활용 사업에 선운사가 신청한 주제가 “보은염 이운 행사 ‘1500년을 이어온 은혜 갚은 소금이야기’”인 것은, 검단선사와 보은염 설화를 통해 백제 창건설을 수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검단선사(왼쪽)와 의운스님(오른쪽).

조선 초인 1474년부터 1483년에 행호스님이 선운사를 중창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당우는 불타버렸다. 그 후의 사정은 1698년 김우항이 쓴 <선운사중수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선운사의 주불전은 대웅보전으로 이곳 불단에는 중앙 비로자나불, 향우 약사불, 향좌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의 주존은 석가여래인데 선운사는 비로자나불이 주존이다. 비로자나불이 주존이면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이 되어야 하는데, 조선후기에는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 선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속리산 법주사도 비로자나불이 본존인데 현재 불전 이름은 대웅보전이다.

선운사 대웅보전 비로자나불상 좌우 두 불상에 대해서는 조상(造像) 기록이 발견되기 전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라는 견해도 있었지만, 1998년 비로자나불상 대좌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약사불과 아미타불로 확인되었다. 선운사 비로자나 삼불상 뒤에는 후불도로 탱화 대신 1844년에 그려진 벽화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벽화는 설법도인데 중앙 비로자나불, 향우 약사불, 향좌 아미타불이 설법하는 모습이다.

선운사 비로자나 삼불상의 크기는 어떤가? 비로자나불상은 295cm, 약사불상은 256.5cm, 아미타불상은 266cm이다.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상은 3m에 가깝고 좌우 불상은 약간 작게 표현해 시선이 본존불로 향하게 하고 있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 석가불상이 550cm이며, 부여 무량사 아미타불상이 522cm, 보은 법주사 비로자나불상이 509cm이니 이들 상보다는 작은 편이다. 그러나 조선후기 불상 가운데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선운사 대웅전의 세 불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비로자나불상 대좌의 기록에는 ‘비로불(毘盧佛) 약사여래(藥師如來) 아미타불(阿彌陀佛) 목삼존(木三尊)’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해 선운사 비로자나 삼불상을 목조불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1612년에 조성된 해남 대흥사 삼세불상도 조성 발원문에는 ‘소불상(塑佛像)’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은 나무로 큰 틀을 형성한 후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선운사 불상 역시 소(塑)·목(木) 불상일 가능성이 높다.

선운사 비로자나삼불상을 만든 장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비로자나불상 대좌에는 두 가지의 묵서기가 있는데, 1633년에 참여한 조각승은 ‘무염, 천언, 도우, 성수, 성률, 쌍조, 해심, 성관, 대우, 신견, 애생, 순일’ 등이고, 1634년 도금(鍍金) 때 참여한 조각승은 ‘법해, 무염, 도우, 성수, 신회, 해심, 운일, 성관, 설의, 신견, 옥행, 쌍륭’ 등으로 모두 12명이 기록되어 있다. 수조각승은 무염이며 1634년 도금 때 맨 앞에 기록된 법해스님의 역할은 도금을 주관한 금장(金匠)일 것으로 추측된다.

1633년에 선운사 비로자나삼불상을 조성한 조각승 무염은 이후 주로 전라도와 강원도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주로 벽암각성 스님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그는 선운사 비로자나 삼불상을 시작으로 1635년 영광 불갑사 대웅전 삼세불상, 1650년 대전 비래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 1651년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1652년 완주 정수사 극락전 아미타삼존상, 1654년 영광 불갑사 명부전 지장시왕상, 1656년 완주 송광사 나한전 삼세불상 등을 조성하였다. 

선운사 대웅전은 처음에도 현재와 같은 단층이었을까?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세워진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과 부여 무량사 극락전을 비롯한 주불전들은 대부분 2층으로 건립되었다. 선운사 대웅전 역시 2층으로 세워졌던 것은 “1839년 5월 장마로 두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지자 1840년 봄에 보수했고 상층이 함몰된 것을 개창하고 이에 단청했다”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층 불전에 어울리는 장대한 큰 불상이어야 해서 얼굴이나 목, 상체 등이 자연스럽게 일반 불상보다 길게 표현되었다. 

선운사 비로자나삼불상은 머리 중앙에 반달 모습을 한 중앙계주가 있고 정상에도 둥근 정상 계주가 표현됐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변형 우견편단을 했고, 좌우 두 불상은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의 착의법을 하고 있다. 본존불이 우견편단을 하고 좌우 협시불이 통견의 착의법을 한 것은 조선후기 삼불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비로자나불은 두 검지를 세워 오른손 검지를 왼손 검지로 감싼 권인을 하고 있다. 약사불은 왼손을 들고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들어 서로 대칭적인 수인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17세기 삼존불의 특징이다. 세 불상 모두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부은 것처럼 표현한 두 눈은 논산 쌍계사 삼세불상처럼 애처롭게 중생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고창 선운사 비로자나삼불상은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의 비로자나 삼불상과 매우 비슷하다. 연화장세계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방 만월세계의 약사불,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함께 조성해 조선후기 불교신앙의 형태를 잘 알려주고 있다.

[불교신문3329호/2017년9월13일자]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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