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멀리서 손님이 다녀갔다. 한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가 연락이 닿아서 여기를 찾아왔다. 그의 곁에는 중년 이후에 만난 부인이 있었는데 무척 다정해보였다. 인생을 살면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도 행복의 과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부부는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가길 염원하며 기도 올렸다고 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행복의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학자 고(故) 김동화 박사는 평소에 “유구(有求)면 유고(有苦)이고, 무구(無求)면 무고(無苦)이다”는 말씀을 자주 언급했다. 이 뜻은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구하는 것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다’는 명언이다.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소유하는 것에 비례하여 괴로움의 부피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심이 많으면 행복이 줄어들고, 욕심이 적어지면 행복이 늘어나는 이치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만족하는 것보다 구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어서 세계인들의 축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메달 수여식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흥미 있는 현상이 있다. 나도 매번 관심 있게 보았던 일이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이 기뻐하지만 대체로 은메달 선수는 크게 웃지 않았다. 그것은 금메달 도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그렇다는 보고서가 있었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는 자책 심리가 은메달에 대한 기쁨을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은메달 선수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이와 달리 동메달 선수가 가장 행복했다. 그것은 동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렇다. 만약에 순위권에서 멀어졌다면 그 동메달은 다른 선수에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는 금메달의 행복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은메달 선수는 목표를 위로 구했기 때문에 덜 행복했지만, 동메달 선수는 목표를 아래로 구했기 때문에 더 행복했다. 따라서 크게 바라면 크게 괴롭지만 조금 바라면 조금 괴로운 것이다. 이 논리를 정리한 것이 ‘무구(無求) 행복론’이다. 결국 큰 욕심 없는 마음이 행복의 길이다. 달리 다른 방도가 없다.

[불교신문3322호/2017년8월19일자] 

현진스님 청주 마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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