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미술공예협동조합은 불상, 범종, 옻칠 등 16개 분야 불교 미술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평균 30년 이상 자기 분야에서 한우물만 파온 경력자들이다. 지난 8일 만난 협동조합 회원들. 사진 왼쪽부터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복원조형물), 원천수 성종사 이사(범종), 정태수 동성불교사 대표(불상주조), 김두호 문화재 보수 개금장(개금불사), 김대건 성덕고건축 대표(사찰건축), 김종민 한비채 대표(나전칠기), 박연호 누리불교예술원 대표(목공예).

■ 걸음마 시작한 한국불교미술공예협동조합

건축 등 불교 미술 ‘한우물’ 판
평균 30년 이상 전문가들 모여
16개 분야 ‘원스톱 서비스’ 제공

사라질 위기 처한 전통 기술 살리고
사찰에 맞는 효율 시스템 구축 목표

18세 때 시작한 목공일은 자연스레 그를 절 안으로 불러들였다. 나무먼지, 톱밥을 잔뜩 뒤집어 쓴 채 무아지경으로 재목을 깎고 땀을 흘리며 세속의 온갖 잡념도 함께 깎아 내다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정결해졌다. 법당에 문을 하나 다는 일부터 나무 말뚝을 박고 축대를 쌓아 올리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그의 손을 타지 않는 일이 없었다. 그를 지켜봐온 스님은 그 다음 일을 또 한 차례 부탁하며 “땅이 좋은지 좀 봐 달라”, “방향이 틀어진 것 같은데 괜찮겠느냐” 등 세세한 의견도 물어왔다.

“그냥 건물만 지은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각자 스님들하고의 인연이 있잖아요. 게다가 내 손으로 직접 부처님 법당을 짓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죠. 몸이 좀 고되고 힘들더라도 그런데서 성취감을 찾았던 것 같아요.” 반백이 넘도록 목장 일을 해 온 도편수 김대건 성덕고건축 대표는 “그러나 이것도 다 옛 말”이라고 했다.

와장, 드잡이, 석장, 미장이, 단청장과 힘을 합해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부터 공사 감리까지 책임지고 완성시켰던 예전과 달리 요즘 목공들은 사찰 불사를 책임감 보다는 의무감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사찰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을 받는 불사를 하게 될 경우 규모가 큰 업체와 계약을 맺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영세한 개인사업자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불사에 하나둘 참여하던 불교 미술 전문가들은 그렇게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면 쓰겠냐’ ‘우리도 뭔가 함께 해보면 좋겠다’고 궁리하기 시작하던 2015년 12월, “영세한 불교 미술 전문가도 먹고 살고 사찰에서도 흔쾌히 믿고 맡길 수 있는 ‘괜찮은 연대’를 하나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모았다. 그것이 한국불교미술공예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현재 회원은 16명. 불상, 주물, 범종, 주철, 나전칠기, 옻칠, 탱화 등 16개 분야 전문가들이 조합원으로 소속돼 있는데 서로 중복되지 않도록 분야를 구분해서 운영한다. 수십년 동안 사찰 불사에 직접 참여해 깎고 다듬고 색을 칠하는 일을 해온 전문가들이 한 데 모여, 사찰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현판을 다는 일부터 색을 칠하고 불상과 범종을 조성하는 일까지 모두 한 번에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 20년부터 최대 50년 이상까지 경력 또한 다양한데, 무엇보다 조합원 각자가 모두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사찰 형편을 잘 알고 있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손이 직접 가는 작업 때문에 고된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없고 기계의 발전으로 일자리까지 줄어드는 세태에서 조금이나 불교 미술의 전통을 살리고자 모인 셈이다.

지난 4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참가한 한국불교미술공예협동조합 부스. 18명의 작가가 모여 불상, 범종, 탱화, 단청 등 약 100여 점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다.

신흥사 통일대불, 조계사 대웅전 삼존불 조성 등의 복원 불사에 참여했던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는 “각자 자기 분야에서 수십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고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화에 따르기에는 혼자의 힘으론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불교 미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 거의 없는 데다 대기업 경쟁 입찰 단가 싸움에서도 밀리는 상황에서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했다.

협동조합의 힘은 단순히 사업을 함께함으로써 얻는 이익에 있지 않다. 조합의 진정한 힘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그 시너지 효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 범종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위에 나전이나 옻칠을 입힌다든지, 불상을 조성하면서 개채와 개금을 보다 정교하게 한다든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면 효율성 뿐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성까지 가미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쇳물 붓는 사람’이라 칭하던 정태수 동성불교사 대표는 “전문가들이 힘을 모으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된 노동으로 불교 미술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적어지면서 인건비는 계속해서 오르는데,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낮은 단가와 인건비로 일을 수주하게 되면 국내 전문가들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게 요즘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한국 불자들이 낸 보시금으로 이뤄지는 불사일수록 오랫동안 그 분야를 다뤄온 국내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며 “단가를 낮추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쓰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균열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틀어지고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분야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불교 미술”이라며 “그에 맞는 재료와 기법, 그리고 이를 완성하는 사람들의 노력까지 모두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도 했다.

공감이 쌓이면 연대가 되고 연대가 쌓이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김두호 한국불교미술공예협동조합회장은 “지금은 사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착한 가격으로 양질의 기술을 한 데 만날 수 있는 조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국내에 해외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은 불교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제자리에서 한우물만 파온 불교 미술 전문가들이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또 그 수계자들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협동조합이 그리는 미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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