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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에세이] 백담사역 

 

만해의 이름이 들어간 

전각들이 하나 둘 들어서자 

무골이었던 전두환의 흔적도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힘겨루기를 보면서 

‘일해가 만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 되 뇌이곤 했다

백담사는 산 교육장이었다

동서고속화철도 노선에 

백담사역이 생긴다고 한다 

내설악의 주인인 백담사와, 백담사의 산내 암자인 오세암·봉정암·영시암 등은 우리나라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자장율사가 이곳을 찾아든 이래 숭유억불의 시대에 불교중흥을 꿈꾸었던 보우대사와 방외인의 삶을 살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백담계곡을 오르내리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고, 율곡 이후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삼연 김창흡은 출세길을 버리고 이곳 영시암으로 몸을 숨겼다.

조선시대만 해도 설악산은 무명의 산에 가까웠다. 설악산이 사대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유학자들이 흠모했던 김시습과 김창흡 덕분이었다. 14세의 나이에 여성의 몸으로 남장을 하고 전국을 유람했던 김금원도 1851년에 편집한 여행기록서 <호동서락기>에서 김시습과 김창흡 덕분에 설악산은 금강산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근대에 이르러 설악산, 그 중에서도 내설악을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킨 사람은 단연 만해 한용운과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만해 한용운은 오세암에서 오도송을 읊었고, 백담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 만해에게 이곳 내설악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였다. 그는 스님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 힘을 다 소진하고 나면 다시 내설악을 찾아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내면의 힘을 축적한 뒤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갔다. 삶의 진퇴(進退)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알았던 그에게 내설악 골짜기는 무한한 에너지원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공 청산의 일환으로 1988년 백담사로 현대판 유배를 떠났다. 그는 최근 펴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백담사에서 머물렀던 시간을 ‘백담사에서의 769일’(제3권 제3장)로 기록했다. 백담사라는 절의 이름조차도 몰랐었다는 그가 이곳 백담사에 유폐되면서 백담사는 일약 현대사의 한복판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하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사에 청맹과니였던 나도 백담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백담사는 유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던 황량한 절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유발로서 만해 한용운 선양사업과 관련된 자잘한 심부름들을 하게 되었다. 백담사 마당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귀신이 아니라 칠흑 같은 밤에 홀로 듣는 물소리임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스님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쓴 근대적 문인이었던 만해는 역시나 힘이 셌다. 만해의 이름이 들어간 각종 전각들이 하나 둘 들어서자 무골이었던 전두환의 흔적들도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의 힘겨루기를 보면서 ‘일해(전두환 호)가 만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라고 되 뇌이곤 했다. 백담사는 역사의 현장이자 현대사의 산 교육장이었다. 

최근 춘천과 속초를 잇는 동서고속화철도 노선에 백담사역이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는 2019년에 착공해 2025년경에 완공될 예정인 동서고속화철도는 춘천역에서 출발해 화천, 양구, 인제를 거쳐 백담사역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종점인 속초로 향하게 된다. 원래 백담사역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는 없었지만 “열차 안전성 확보와 교행을 위한 신호장 역할”을 위해 새로 신설 역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나는 앞의 인용 문장을 “역사(歷史) 안전성 확보와 교행을 위한 신호장 역할”이라 바꾸어 읽으며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백담사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불교신문3319호/2017년8월9일자] 

이홍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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